[경제 프리즘/홍권희]성장과 복지 다 쓸어버리는 재정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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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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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권희 논설위원
홍권희 논설위원
막판 이틀간은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두 달을 끌던 국가부채 한도 증액에 관한 여야 협상이 간신히 타결되고 의회의 의결과 대통령의 서명이 이뤄졌다. 초강대국 미국은 2일(현지 시간) 이렇게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를 일단 넘겼다. 그러나 박수는 없었다. 부채 한도를 늘려 봤자 적자투성이 미국재정이 나아지지 않기 때문이다. 협상 기간 중 미국경제와 함께 볼모로 잡혔던 각국의 불만도 터져 나왔다.

세계경제의 폭탄 같은 美국가부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는 미국을 향해 “세계 경제의 기생충”이라는 말까지 했다. 러시아는 1998년 디폴트를 선언한 전과가 있다. 정작 미국의 걱정은 1조 달러 이상의 미국 국채를 보유하고 있는 중국 등 아시아의 달러 부국들이 투자대상을 바꿀지 여부다. 유동성과 안전성 면에서 미국 국채만큼 좋은 투자대상은 드물다. 하지만 중국통인 스티븐 로치 모건스탠리 아시아담당 회장은 “중국이 달러에서 급속하게 멀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 외환당국자는 ‘외환 투자의 다각화’ 방침을 지난주에 또 밝혔다. 다각화란 미국 국채 대신 한국 등 제3국의 국채를 산다는 뜻이다. 한국은행이 12억 달러어치의 금을 사들인 것도 미국 국채 위주의 투자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다.

중국의 민간 신용평가회사인 다궁(大公)은 3일 미국의 신용등급을 A+에서 A로 낮췄다. ‘미국 정치권이 부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보여줬다’는 게 이유다. 미국 신용평가회사들이 미국의 신용등급을 내릴지 주목되는 가운데 중국이 선수를 쳤다. 신용등급이 떨어지면 미국의 국채 이자 부담이 늘어난다.

미국이 부채 문제로 시끄러워진 것은 정치권의 막무가내식 대결 탓이 크다. 미국 정부는 빚을 내서 빚을 갚는 처지여서 의회가 거의 매년 국가부채 한도를 늘려줬다. 그런데 내년 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민주 공화 양당이 국민에게 보란 듯 거의 정반대의 재정적자 해법을 고집하다가 파국 직전까지 가고 말았다. 이념 다툼, 주도권 다툼 끝에 정치권이 사태를 더 악화시킨 셈이다.

집권 민주당은 증세(增稅)와 돈을 더 풀어 경기를 부양하는 식의 정부 역할 강화를 주장했다. 공화당은 과도한 복지의 축소와 감세(減稅)를 내세웠다. 공화당의 증세반대 세력인 ‘티 파티’는 국가부도를 냈으면 냈지 세금은 못 올린다고 나섰다. 공화당은 조지 W 부시 정부 시절 감세와 아프간·이라크 두 개의 전쟁으로, 민주당은 버락 오바마 현 정부가 경기부양 등으로 큰 적자를 낸 사실은 덮고 상대방 탓만 앞세웠다.

정치적 타결로 미국 정부는 국가부채 한도가 14조3000억 달러에서 2조4000억 달러 늘어나는 대신 앞으로 10년간 같은 금액의 재정지출을 삭감해야 한다. 의회의 12인 특별위원회가 정부 예산에 칼을 대는 지출삭감안을 짜게 된다.

경기부양도 ‘세계경찰’도 어려워져


경기부양 예산부터 깎아야 할 판이어서 돈을 풀어 민간 소비를 촉진하기가 어려워졌다. 고용 감소로 소득과 소비가 줄면 경기회복이 더뎌져 더블딥(경기회복 이후의 침체)도 각오해야 한다. 세계경제도 그 충격을 피해갈 수 없다. 민주 공화 양당이 공들여온 다양한 복지정책 예산도 깎일 수밖에 없다. 재정위기 앞에서는 성장도 복지도 설 땅이 없다. 이념 싸움의 결과로 양당이 이념을 지키기가 더 어려워진 셈이다.

영국은 제2차 세계대전을 치르기 위해 미국에서 빌린 부채가 늘어나면서 국제사회의 리더십을 미국에 넘겨야 했다. 이후 미국은 ‘세계의 경찰’ 역할을 해왔지만 지출 삭감에 따라 국방예산이 계속 깎이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마이클 멀린 미 합동참모본부 의장은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적(敵)은 국가부채”라고 말했다. 어느 나라에나 맞는 말이다.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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