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조성식]거악과 동물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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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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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식 신동아팀 차장
조성식 신동아팀 차장
“한마디로 쑥대밭이 됐다.” 이명박 정부 검찰에 대한 전직 검찰 고위간부의 평이다. 인사와 수사에서 총체적으로 실패했으며 살아 있는 권력에 유난히 약한 모습을 보임으로써 정치적 중립성과 수사 독립성이 후퇴했다는 것이다.

정권 잘못도 있고 검찰 잘못도 있다. 초기 주요 보직 인사에서 특정 지역의 색채를 조금만 옅게 했더라도, 그래서 몇몇 유능한 검사마저 지역편중 인사의 수혜자로 매도당하는 일이 없었더라면 그렇게까지 갈등의 골이 파이진 않았을 것이다. 대통령이 과거에 저지른 숱한 위법행위가 국민의 선택으로 덮였다고 해서 준사법기관의 수장에 대한 도덕성 검증을 허투루 해 ‘청문회 낙마’라는 치욕을 겪을 이유는 없었다. 분위기를 쇄신한다며 수십 명의 고위 간부를 마구잡이로 몰아내지만 않았더라도, 막 옷 벗고 나간 사람이 총장으로 돌아와 출입기자들에게 돈봉투를 돌리는 해괴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유례를 찾기 힘든 대폭 물갈이 인사의 결과는 간부들의 줄서기였다.

검찰 본연의 기능은 경찰에 대한 수사 지휘다. 하지만 검찰권이 기형적으로 큰 우리나라에서는 검찰의 자체 수사가 더 중요한 기능인 것처럼 인식돼 있다. 이 정부 검찰의 수사 성적표는 어떤가. 대통령 측근과 정권 실세들, 재벌의 비리를 사정없이 수사했던 전(前) 정부의 검찰과 비교하는 건 식상하기까지 하다.

검찰은 중수부 폐지를 반대하는 논리로 ‘거악 척결’을 내세웠다. 이에 대해 한 중견간부는 “거악(巨惡)이 아니라 거악(去惡)을 척결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활발했던 사정수사는 성과와 별개로 표적수사, 보복수사 논란에 휩싸였다. 전 정권과 관련된 사람이나 기업 수사는 적극적이거나 과도하게, 현 정권 관련 수사는 소극적이거나 무성의하게 한다는 ‘오해’를 받아왔다. 게다가 법정에서 번번이 깨져 체면을 구겼다. 조금 더 치밀하게 수사하고 정교한 기소논리를 개발했더라면 결과가 달라졌을지 모르지만 검찰은 그렇게 유능하지 못했다. 오죽하면 “정권교체가 이뤄진다면 검찰이 일등공신”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올까. 안 하느니만 못한 수사로 이 정권의 반대세력을 똘똘 뭉치게 한다는 얘기다. 신임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은 청와대가 뒤늦게 중수부 폐지에 반대한 것이 정권 말기의 ‘보신’을 염두에 두고 검찰과 짬짜미한 것이라는 의혹을 해소해야 할 의무가 있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갈 문제는 표현의 자유다. 6월 프랑크 라뤼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은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한국에서 표현의 자유가 심각하게 침해되고 있다”고 보고했다. 그의 말이 아니더라도 이 정부 출범 후 표현의 자유 논란이 부쩍 불거진 게 사실이다. 그 논란의 한복판에 검찰이 있다.

검사 출신 김용원 변호사는 ‘천당에 간 판검사가 있을까’라는 책에서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에 빗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세력을 비판했다. 동물농장의 권력자는 돼지들과 그 하수인인 개들이다. 돼지들을 비판하는 동물이 나타나면 어김없이 개들이 물어뜯는다. 과장된 비유라고 생각되지만, 표현의 자유를 오그라뜨리는 수사는 아무리 신중해도 지나치지 않다. 사상과 학문, 예술과 언론의 시장에 맡길 일까지 검찰이 떠안을 필요는 없다. 검찰만능주의는 민주국가에 어울리지 않는다. 새 총장은 검찰의 기를 살리되 힘을 빼야 한다.

조성식 신동아팀 차장 mairso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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