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권희]서울보증보험 원리금 탕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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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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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이 야당 시절 그리고 대선후보 때 줄곧 내세운 ‘농어민 부채 탕감’은 대표적인 대선 거짓 공약 중 하나로 꼽힌다. 실제 탕감은 못하면서 국민에게 ‘정부 빚은 빚이 아니다’라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줬다. 2002년 대선 때 세간에는 “이회창 후보가 신용불량자 빚 탕감을 약속하면 당선될 것”이라는 농담 섞인 판세 분석이 나돌았다. 박일충 전 건국대 교수는 수필집 ‘어바웃 계당선생’에 ‘(신용불량자들은) 깐깐한 인상의 이회창 씨는 탕감이라는 이름의 떼먹기 같은 것으로 자기들을 구제해줄 것 같지 않으니 그에게 투표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썼다.

▷김병기 서울보증보험 신임사장이 그제 총 대출자의 22%인 서민 채무자 19만여 명의 이자를 탕감하고 빚을 감면해주겠다고 발표했다. 학자금 대출자, 신원보증보험 채무자, 10년 이상 장기 채무자 중 상용차 할부 구매 채무자 같은 생계형 서민 채무자가 대상이다. 이들의 원리금 약 9000억 원에서 30%를 경감하면 3000억 원을 덜어주게 된다. 빚 감면을 계기로 서민 채무자들이 정상적인 신용경제 생활로 복귀할 수 있다면 큰 다행이겠다.

▷하지만 10년 이상 빚을 갚지 못한 채무자가 원금의 70%인들 갚을 능력이 있을지 의문이다. 이들이 다음번 탕감을 기다리느라 빚 갚을 노력을 안 하는 도덕적 해이가 커질 수 있다. 조금씩이나마 열심히 갚은 채무자만 바보로 만들면 곤란하다. 감면 대상자의 절반이 여러 곳에 빚을 지고 있어 빚이 일부 준다고 해도 신용관리대상자(신용불량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김 사장이 “감면 대상은 사실상 회수가 어려운 채권”이라고 말한 걸 보면 채무자에게 실효는 거의 없는 생색내기에 그칠 수도 있다.

▷서울보증보험은 외환위기 때 예금보험공사와 캠코를 통해 공적자금 12조 원을 얻어 쓰고 남은 빚이 8조1700억 원에 이른다. 매년 3000여억 원을 갚아가는 처지에 예보나 감독당국과 깊이 상의하지 않고 거액 채무를 탕감한 배포가 놀랍다. 옛 재무부 출신인 김 사장이 몇 년간 호시탐탐 노리던 금융계 입성 기념으로 ‘친서민’ 화두에 맞춰 선심을 썼다는 해석도 있다. 선심을 쓰더라도 서민금융이 공동보조를 취해 효과를 키우거나 기존의 개인회생 제도를 활성화시키는 방안을 함께 활용했어야 옳다. 금융인들도 정치인을 닮아 가는가.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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