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조지 소로스]유로존, ‘플랜 B’가 필요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7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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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소로스 소로스펀드 회장
조지 소로스 소로스펀드 회장
유럽연합(EU)은 사회학자 카를 포퍼가 명명했던 ‘점진적 사회공학’에 의해 생겨났다. ‘유럽연방국가’라는 비전을 품었던 정치가들은 이상(理想)이 서서히 이루어질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에 따라 목표를 세우고 필요한 만큼의 정치적 의지를 동원했다. 또 각국이 정치적으로 감당할 만한 선에서 주권을 내려놓도록 하는 조약을 체결했다. 이것은 전후 유럽철강공동체가 EU로 바뀐 과정이기도 했다. 한 번에 하나씩, 그러면서도 한 단계 한 단계가 불완전해 발전적인 무언가가 더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 말이다.

EU를 구상한 사람들은 옛 소련의 위협에 처했던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과거 기억과 국가 간 통합으로 얻을 미래의 경제적 이익을 그려보면서 정치적 의지를 끌어냈다. 소련이 붕괴하자 독일 통일에 대한 희망과 비전으로 부풀었다.

독일은 자국의 통일이 유럽 통합이라는 큰 그림 아래 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이를 위해 기꺼이 통일을 이행할 준비를 했다. 마스트리히트조약과 유로화 도입으로 유럽 통합은 절정에 이르렀다.

그러나 유로화는 불완전한 통화였다. 중앙은행은 있지만 중앙 재무부가 없었기 때문이다. EU를 구상한 사람들은 이런 문제점을 알고 있었지만 재무부에 대한 필요성이 생기면 이를 만들려는 정치적 의지 또한 발동될 것이라고 믿었다.

문제는 유로화가 예상치 못한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시장에서 통화 과잉이 자율적으로 조절될 수 있고 인위적인 조정은 공공 부문에만 필요하다고 여겼지만 판단 착오였다. 국가별 통화정책을 지나치게 신뢰했던 것도 과오였다. 금리가 낮은 국가에서 부동산 거품 현상이 생기는 등 문제가 발생했던 것이다. 더욱이 독일 통일이 이뤄진 후 유럽 통합의 주요 추진동력은 사라졌고 재정 위기로 오히려 유럽 국가 간 붕괴가 촉발됐다.

재정 위기를 겪은 유럽 국가들이 EU 공동의 신용이 아닌 자국의 신용 회복에 나서면서 전체 유럽 국가의 유대라는 것에 회의가 나타났다. 유로존은 부채에 허덕이며 침몰해가는 국가와 쾌속 항진하는 국가로 양분됐다. 독일 같은 유럽 내 채권국은 원조를 좌지우지할 수 있지만 채무국은 파산 상태로 치닫고 있다. EU 정치기구는 유럽 통합이라는 과제가 아니라 현 시점의 위기를 해결하는 것으로 역할이 바뀌었다. 결국 재정 문제가 불거진 현 시점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긴다면 유럽 통합에 반대하는 편에 서야 한다.

현재의 재정 위기에 대한 타개책이 있느냐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지금으로선 시간을 버는 수밖에 별다른 방법이 없는 듯하다. 그러나 시간을 벌면 벌수록 유럽 국가 간 양분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이다. 재정적자 위기에 처한 그리스의 앞날이 불투명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제 그리스와 유로존은 ‘플랜 B’를 세워야 한다. 그리스는 디폴트(채무불이행)를 피하기 어렵고 포르투갈 같은 유럽의 다른 국가로 번질 수도 있기 때문에 유로존은 보호 조치가 필요하다. 유로본드와 예금보험을 유로존에 더욱 폭넓게 적용하는 등의 계획이 필요하다.

플랜 B를 위한 정치적 의지를 동원해야 한다. 유럽 지식인들은 현실에 대한 자신들의 이해가 불완전할 수 있고 열린사회란 신성불가침의 합의에 의해 돌아가는 사회가 아니라 그 합의가 실패했을 때 언제든 대안을 수용할 수 있는 사회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현 위기가 방어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바뀐다면 국가별 해결책이 아니라 전(全) 유럽적 해법을 찾아야 한다. 통합을 지향하는 유럽인은 자국 이익만을 지지하는 사람이나 통합에 반대하는 이들보다 분명히 수적으로 우세한, 침묵하는 다수이기 때문이다. ⓒProject Syndicate

조지 소로스 소로스펀드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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