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허진석]현대史 분량 대폭 축소해 ‘사회적 논란’ 줄이겠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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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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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 문화부 기자
허진석 문화부 기자
역사 교육과정 개정안 마련을 책임지고 있는 국사편찬위원회는 6월 30일 ‘2011년 역사 교육과정 개정안 공청회’를 열었다. 15일 교육과학기술부에 제출될 시안은 검토 과정을 거쳐 8월 초 확정될 예정이다.

이 공청회에서 국사편찬위원회는 고교 한국사 교과서의 시대별 분량을 전근대 30%, 조선 후기부터 식민지 시기 60%, 광복 이후 10%로 제시했다. 이는 기존 교과서의 현대사 분량이 약 30%였던 것에 비하면 현대사가 대폭 축소된 안이다. 그 대신 조선시대 분량은 그만큼 늘어난다. 현재 한국사 교과서의 현대사 기술이 지나치게 민중·민족주의 사관에 치우쳐 있으며 북한에 우호적이라는 지적을 받아 사회적 논란이 계속되자 아예 현대사의 비중을 줄임으로써 논란의 소지를 없애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당연히 새로 제시된 안에 대해 다시 논란이 일고 있다. 국사편찬위원회의 현대사 비중 축소안은 자유민주주의와 대한민국 정체성에 대한 인식을 약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 것이다. 공청회 이후 한국현대사학회는 이런 취지를 담은 건의서를 국사편찬위원회와 교육과학기술부에 제출했다. 국방부도 ‘국가정체성과 안보의식 유지에 도움이 되지 않는 내용을 수정하라’는 건의서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한편으로 기존 국사학계 일부에서는 ‘교육현장에 제대로 적용되지도 않은 한국사 교과서를 또 바꾸려 한다’는 불만이 나온다.

이 같은 혼란은 정부가 ‘한국사 필수’를 성급히 선언한 데 원인이 있다는 것이 학계의 지적이다. 역사 교육 강화를 명분으로 필수화를 추진하면서 한국사 교과서의 편향성은 제대로 살피지 않은 것이 문제의 시작이었다는 것이다. 현행 고교 한국사 교과서들은 대체로 북한 체제에 대해서는 우호적인 반면 대한민국의 건국 과정이나 한국의 발전을 이끈 원동력에 대한 설명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현대사를 전공하는 학자 한 사람은 이번 공청회를 지켜본 뒤 “새 한국사 교과서를 이번 공청회 방향에 맞춰 만든다면 차라리 한국사가 아니라 ‘조선사’라고 해야 할 듯하다”며 “고려와 조선의 건국세력과 건국이념, 제도 등을 배우는데 대한민국의 건국세력과 이념, 제도를 왜 배우지 못하는가”라고 반문했다.

국사편찬위원회는 ‘현대사의 분량을 대폭 축소하면 당장의 논란거리를 줄일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만큼 후속세대들이 우리 역사의 숲을 ‘성찰’과 ‘자긍’의 양 날개로 살필 수 있는 기회도 사라지게 된다. 역사 앞에 책임지는 역사가들의 자세가 아쉽다.

허진석 문화부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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