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임혁백]동북아 체스판 새로 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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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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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혁백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임혁백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최근 김정일의 방중으로 동북아 국제질서가 요동치고 있다. ‘김정일이 양저우로 간 까닭은?’이라는 퀴즈를 풀려고 머리를 짜는 사이 김정일은 평양으로 귀환했고 6월 8일과 9일에는 압록강 하구의 황금평 개발과 두만강 하구의 나진·선봉 공동개발 착공식이 열렸다. 김정일은 부자 세습을 승인받기 위해 1년 사이 중국을 3차례나 방문했다. 김정일의 협상카드는 압록강 하구와 동해의 요충지인 나진·선봉지역 경제개발권이었다. 그러나 중국은 압록강 하구에는 별 관심이 없고 나진에만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김정일도 나진이 가지고 있는 엄청난 전략적 가치를 알고 있었기에 후진타오와 원자바오에게 쉽게 내주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협상이 난항을 겪었고 김정일이 중국의 실세인 ‘상하이파의 대부’ 장쩌민을 만나러 기차를 타고 양저우로 간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은 이번 방중에서 부자 세습을 위해 나진을 중국에 내주는 ‘통 큰’ 양보를 한 것 같다. 두만강 하구의 나진·선봉 개발은 겉으로는 경제와 물류 개발로 포장돼 있지만 실제로는 엄청난 군사적 전략적 의미를 담고 있다. 중국은 2009년 ‘미중(G2) 전략과 경제대화’를 시작하면서 옛 소련 붕괴 이후 미국이 주도하는 일방주의적 단극체제를 끝내고 미국과 중국이 세계를 분점하는 양극체제를 구축하려 했다. 미국을 위협하는 중국의 경제력이 G2라는 말을 만들어냈으나 중국은 경제력만으로 미국과 경쟁할 수 있는 헤게모니 국가가 될 수 없다. 헤게모니 국가가 되려면 전 세계에 중국의 군사력을 투입할 수 있는 대양해군이 있어야 하나 현재의 중국 해군은 자국 앞바다도 안전하게 보호할 수준이 되지 못한다. 중국 동북 3성의 앞바다인 동해에도 미국 러시아 일본 한국의 군함은 떠 있으나 중국 군함은 보기 힘들다. 중국이 자국 앞바다에서도 미국과 경쟁하지 못하면서 G2시대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허세일 뿐이다. 그래서 중국은 끈질기게 나진항 개발과 사용권을 북한에 요구했으나 나진의 전략적 가치를 알고 있는 김정일은 쉽게 내주지 않으면서 중국과의 협상 지렛대를 높이는 데 이용했다.

中의 나진 진출로 지각변동 시작

그러나 이제 나진 개발이 중국에 넘어가고, 나진항에 중국 군함이 들어오고, 동북 3성의 물자를 실은 중국 상선이 나진항을 출발해 동해를 지나 대한해협을 거쳐 서해와 동중국해, 남중국해로 자유롭게 통항하고, 중국 상선단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중국 해군이 동해를 내해처럼 휘젓고 다닌다는 것은 대한민국과 미국, 러시아, 일본 모두에게 상상하기조차 싫은 끔찍한 동북아 안보 체스판 풍경이다.

나진항의 전략적 가치는 이미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들이 확인해 주었다. 일본 메이지(明治) 지도자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는 조선을 일본 제국의 ‘이익선’, 만주를 ‘생명선’으로 간주하고 절대 러시아에 양보할 수 없다면서 러일전쟁을 일으켰다. 나진은 ‘이익선’과 ‘생명선’이 만나는 전략적 요충지였기 때문에 러시아와 전쟁을 마다하지 않고서라도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1990년 냉전체제 붕괴 이후 미국이 가장 관심을 보인 북한 지역은 나진항이었고, 북한도 나진을 쉽게 중국에 내주지 않음으로써 중국에 예속당하는 것을 피하고 나진의 판돈을 올려 미국이나 한국에 비싸게 넘기려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북한이 중국에 나진을 넘기지 않음으로써 가장 큰 이익을 얻은 나라는 역설적으로 일본이다. 북한은 중국으로부터 일본을 보호해주는 입술, 즉 순망치한의 입술 역할을 했다. 동해 바다의 경우 나진을 중국에 내주지 않음으로써 일본을 중국으로부터 보호해주는 역할을 한 것이다.

북한과 중국의 나진 공동개발로 동북아의 체스판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국내 정치의 좁은 틀에 갇혀 대북제재, 압박, 봉쇄에 몰두하는 동안 북한은 중국의 지원으로 생명을 이어 나갈 수밖에 없었다. 북한의 중국 예속화는 예상을 넘는 속도로 진행돼 중국은 이제 동해를 중국의 내해로 만든다는 19세기 말 이래의 꿈을 실현할 호기를 맞이하고 있다. 이에 미국 일본 러시아가 반발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고 다시 한반도와 동해가 동북아 패권경쟁의 각축장이 되고 있다.

한국이 새판짜기에 안보여 문제

그런데 문제는 ‘동북아 체스판 다시 짜기’에서 한국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이 배제된 채 동북아 체스판이 북방대륙 3각 동맹(중국 북한 러시아) 대 남방해양 3각 동맹(미국 일본 한국)의 냉전시대 대결구도로 회귀한다든가 ‘동북아 G2 대결구도’로 간다면 한국이 가교국가(land bridge) 역할을 해 동북아 다자주의 평화공동체를 만든다는 꿈은 날아갈 가능성이 크다.

한반도의 안보 풍경이 이렇게 변한 데는 현 정권이 외교안보정책과 대북정책을 도덕주의적 이데올로기적 경제주의적으로 밀어붙인 데 있다. 우리 대통령은 남은 임기 동안 단기적 당파적 내향적 외교를 지양하고 국내 정치적 이익과 계산을 넘어 7000만 한민족 전체의 이익을 생각하면서 한민족이 동북아 체스판에서 배제되지 않고 주역이 될 수 있는 원대한 비전과 전략을 갖춘 외향적 초당파적 국가지도자적 외교를 해야 한다.

임혁백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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