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한나라당 다선 중진 ‘명예로운 퇴진’ 이어져야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6월 21일 03시 00분


3선의 한나라당 원희룡 의원(서울 양천갑)이 어제 당 대표 출마를 선언하며 내년도 총선 불출마를 약속했다. 10개월 남은 19대 총선을 앞두고 여야 현역 의원 중에서 불출마를 선언한 첫 사례다. 내년 대통령선거 때까지 각종 재·보궐선거에도 나가지 않겠다며 배수진을 쳤다. 4·27 재·보선 때 당 사무총장인 원 의원은 재·보선 패배에 따른 주류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불출마 카드엔 이를 정면 돌파하려는 정치적 판단도 깔려 있을 것이다. 2004년 오세훈 서울시장의 총선 불출마 선언을 떠올렸을 수도 있다. 이런저런 정치적 포석을 감안하더라도 원 의원의 선택이 당 쇄신의 물꼬를 텄다는 의미도 가볍지 않다.

원 의원의 불출마 선언은 당내 다선 중진 의원들의 거취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중진의원들은 ‘국가사회를 위해 선수(選數)에 걸맞은 정치적 기여를 했다’고 평가받을 만한지 자문해봐야 한다. 중진들이 자기희생적으로 국민을 위한 정치를 했다면 한나라당이 이토록 어려워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들이 자성하는 기미도 없이 국회의원을 한 번 더 하기 위해 발버둥을 치다 보면 노욕(老慾)이라는 손가락질을 받고 한나라당을 구태의연한 당으로 비치게 할 것이다.

영남권에 지역구를 둔 한나라당 의원 62명 중 3선 이상 의원은 19명이다. 영남의 한나라당 의원과 호남의 민주당 의원은 당내 정치를 잘해 공천만 따내면 쉽게 당선됐다.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6선의 이상득 의원을 비롯해 영남권 중진들은 한나라당 간판으로 다선의 영화를 누렸다. 이제 정치 쇄신을 위한 밀알이 될 결심을 할 때가 됐다. 스스로 결단해 명예로운 퇴진을 선언한다면 박수를 받을 수 있다. 지역구를 훑고 다져 당선되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하다가는 여론과 후배 정치인들에게 떠밀려 불명예 퇴진할 수도 있다.

이상득 의원은 지난날 “나와 대통령은 별개다. 지역구민이 (나를) 바란다”고 말했다. 지금은 ‘나라를 위해 한 일이 많다’고 말하고 싶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대통령이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이상득 의원의 위상은 분명히 지금과 달랐을 것이다. 동서고금의 역사가 말해주듯 친족정치는 폐해가 크고 국민의 신뢰를 잃은 지름길이다. 영남권 친박(親朴) 중진들도 그동안 박근혜 전 대표의 후광을 업고 정치적 입지를 다졌다. 내년 총선에서도 박 전 대표의 그림자만 따라다니면 당선된다는 생각을 한다면 구제불능이다.

지금 한나라당은 과거 어느 때보다 심각한 위기 상황이다. 다선 중진부터 자신을 버림으로써 진정한 구당(救黨)에 나설 때다. 지력(地力)이 다한 땅은 갈아엎어야 작물이 잘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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