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송평인]野에 꽃놀이패 내준 한나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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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20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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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평인 논설위원
송평인 논설위원
무상급식은 자녀 한 명당 한 달 5만∼6만 원, 한 해 50만∼60만 원의 지출을 줄여준다. 나처럼 어린 자녀가 둘이면 한 해 100만∼120만 원을 버는 셈이다. 반값 등록금은 무상급식보다 혜택이 훨씬 크다. 등록금이 많게는 한 해 1000만 원이니 500만 원까지도 지출을 줄여준다. 아이들이 대학에 입학하면 한 아이당 4년간 2000만 원, 두 아이면 4000만 원짜리 로또가 기다린다. 누가 마다하겠는가.

이 ‘좋은’ 반값 등록금 논란의 물꼬를 터준 것은 한나라당이다. 그런데 뺨 맞는 것도 이상하게 한나라당이다. 10일 반값 등록금 촛불집회에서 민주당 김진표 원내대표는 “한나라당이 진정 등록금을 반값으로 내릴 생각이 있다면 왜 이 자리에 나오지도 못하는가”라고 물었다. 참가자들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반값 등록금은 민주당에 꽃놀이패다. 한나라당이 반값 등록금은 본래 자기 공약이었느니 어쩌니 해봐야 민주당은 신경도 안 쓴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이명박 대통령 자신이 공약한 반값 등록금, 야당까지 나서서 도와주겠다는데 못한다”는 말로 꽃놀이패를 두고 있다. 이 정권에서 반값 등록금이 실현되든 안 되든 민주당은 손해 볼 게 별로 없다. 국민의 머릿속에 반값 등록금은 민주당이 선점한 공약으로 각인돼 있다. 반값 등록금이 실현되면 민주당이 애쓴 결과다. 실현되지 못하면 말하고도 못 지킨 한나라당 탓이다. 이보다 더 좋은 꽃놀이패가 어디 있을까. 민주당은 예산을 늘리라고 소리치기만 하면 된다.

황우여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반값 등록금이 아니라 등록금 인하를 언급한 것이라고 말을 고쳤지만 귀담아 듣는 사람은 별로 없다. 10% 혹은 20%라도 낮춰주면 국민이 알아줄까. 촛불집회는 반값 등록금이 안 되면 ‘체인지 2012’(내년 정권 교체)라고 외치고 있다. 그런데도 한나라당에는 반값 등록금 쟁점화가 민주당 공약 중 하나를 내년 총선 경쟁에 앞서 미리 김 빼 버린 것으로 자화자찬하는 분위기가 있다. 이참에 무상의료까지 내질러 버리자는 주장도 나온다고 한다.

한국사회가 변하고 있다. 경제성장이 둔화하고 그나마 이뤄지는 성장의 과실조차 자신에게 돌아온다고 느끼는 중산층은 줄고 있다. 유일한 자산인 집값도 오르지 않는다. 이때 경제주체의 전략은 ‘파이 키우기보다는 나누기’, 즉 더 많이 가진 사람의 것을 가져오는 것이고 그것이 복지의 요구로 나타난다.

한나라당도 변화를 느끼고 복지 리모델링을 하고 있다. 결정적인 실수를 하기 쉬울 때가 바로 리모델링할 때다. 민주당과 반대 방향으로 달려온 한나라당이 지금은 누가 먼저 민주당처럼 달리나 경기를 한다. 그러나 민주당과 같은 방향으로 달리는 경쟁에선 민주당만큼 멀리 갈 수 없다는 게 한나라당의 한계다. 그 한계를 반값 등록금 논란이 잘 보여준다.

두 정당이 같은 방향으로 가는 것이 국민으로선 불안하다. 그동안 두 정당이 반대로 향하면서 긴장이 유지됐는데 한쪽으로 쏠리면서 나라 곳간은 누가 지키느냐는 우려가 커진다. 민주당과 차별화하는 복지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가령 서울시가 2014년 초중고교 무상급식 목표를 저소득 30%에서 50%로 확대하기로 했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왜 자기 공약은 부끄러워하고 남의 공약만 부러워하는지, 그건 무슨 콤플렉스 때문인지 궁금하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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