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진녕]無계파 공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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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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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의 내년 총선 전망을 밝게 보는 사람이 드물다. 모 언론사 조사에 따르면 한나라당 현역 의원들조차 절반에 훨씬 못 미치는 평균 129석을 얻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100석 이하, 심지어 80석 정도를 예상하는 의원들도 있다. 한국갤럽의 최근 여론조사 결과도 ‘한나라당을 찍겠다’(28.9%)가 ‘야권을 찍겠다’(38.4%)는 응답보다 훨씬 적었다. 서울은 강남권을 중심으로 3분의 1만 건져도 천운이라는 말이 나온다. 일부 야권 인사는 부산·경남에서도 야권이 35곳 중 과반 또는 20곳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판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도 3일 청와대 회동에서 이런 위기의식을 공유한 가운데 공천 문제를 논의했다고 한다. 두 사람이 ‘공천 원칙에 합의했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서는 청와대와 박 전 대표 측 모두 “사실이 아니다”고 부인한다. 그러나 공천의 핵심은 사람이고 공천을 잘해서 야권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는 것만은 저지해야 한다는 데는 두 사람이 공감했다고 여권 인사들은 전한다. 야당에 과반 의석을 내주면 차기 대권을 노리는 박 전 대표도 불리한 상황을 맞겠지만 이 대통령의 임기 말 국정 운영도 고달파질 수 있다. 두 사람 간에 이런 인식이 어느 정도 통한 것 같다.

▷1996년 신한국당의 15대 총선 공천은 정당사에 남는 성공사례로 꼽힌다. 그 핵심은 과감한 외부 수혈과 철저히 인물 경쟁력에 바탕을 둔 공천이었다. 선수(選數)나 계파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좌파정당인 민중당에 몸담고 있던 이재오 김문수, 소장파 법조인 안상수 홍준표, 인기 앵커 맹형규도 발탁됐다. 기업인 출신의 전국구 의원이던 이 대통령도 서울 종로에 투입돼 당선됐다. 김영삼 대통령과 척을 졌던 이회창을 끌어들여 선대위의장을 맡겼다. 역대 총선을 통틀어 보수정당이 서울에서 승리하기는 이때가 처음이다.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의 마음이 진정으로 통했다면 내년 총선도 볼만한 싸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여건에 따라서는 박 전 대표가 한나라당 선대위원장을 맡을 수 있다는 얘기도 들리지만 여권의 복잡한 내부 사정 때문에 실현 가능성은 미지수다. 정권이나 정당의 운명보다는 자신의 보신을 우선시하는 게 의원들의 생리다. 여든 야든 신선하고 감동을 주는 공천이라야 국민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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