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두현]서울대 총장실 점거, 꼭 그래야 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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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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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현 전 서울대 총학생회 정책위원장
김두현 전 서울대 총학생회 정책위원장
서울대 총학생회가 총장실과 행정관을 점거했다. 학생들의 자치와 의사 표현은 마땅히 보호받아야 하지만 과연 학생들의 총의를 확실하게 전달할 수 있는 행동방안이 불법 점거밖에 없었는지 의문이다.

플래시몹과 거리 집회, 동맹휴업 등 총학생회가 의사를 표현할 방법은 많다. 그중 사회적 파문이 예상되고, 불법성 여지가 있는 본부 점거를 선택한다면 그만한 민주적 정당성과 책임이 따라야 한다.

이번 본부 점거는 이에 부합하지 않는 섣부른 판단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비상총회는 학생회칙에 존재하지 않는 비정상적 의결기구로서 단지 학생 10%의 참여로 성사됐기 때문이다. 차라리 회칙에 명시된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전체 학생총회(학생 20% 참여가 개회 요건)나 총투표(투표 50%가 성사 요건)로 의결했으면 더 나았을 것이다.

이를 용인하더라도 본부 점거 의결에 절차적 하자가 있다. ‘설립준비위 해체’ 안건은 1810명 중 94.7%의 지지로 통과됐으나, 본부 점거에 대한 의결은 정족수 부족(1309명)인 상태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법인화 진행 절차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총학이 스스로에게 관대해서는 안 된다.

다른 문제는 학생운동의 관성이다. 현재 서울대 총학생회를 맡고 있는 ‘학생행진’이라는 학생 정치조직은 2002년과 2005년에도 집권했는데, 그해에는 연례행사처럼 본부를 점거했다. 폭행 사건으로 얼룩졌던 ‘비상총회 후 본부 점거’라는 공식과 모양새는 10년이 지났지만 예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았다. 언제까지 반지성적이고 폭력적인 모습이 학문의 전당에서 반복돼야 하는가.

신자유주의 반대라는 큰 이념의 틀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 총학이 자진하여 점거를 해제할 의지는 없어 보인다. 학교 당국도 불법 점거를 유지하는 상황에서는 협의할 여지가 없다고 했다. 지난 10년 동안 서울대 학생사회에서 벌어진 사건과 사고들로 미루어 판단하건대 이대로 가다가는 더 큰 상처와 반목이 생기지 않을까 우려된다.

실현 불가능한 요구로 상대방을 압박하고 굴복시키는 것은 정치꾼이 할 일이지 지성인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점거에 따른 행정 마비와 학사 업무 피해로 인한 비용 부담은 고스란히 학생들 몫으로 쌓이고 있다.

지금은 건설적인 토론과 대화를 해야 할 때다. 법인화의 순기능을 극대화하고 부작용을 어떻게 예방하며 최소화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또 등록금을 인상하지 않고 재정 운영도 투명하게 하는 방안을 찾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한다.

김두현 전 서울대 총학생회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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