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윤종구]바람 잘 날 없는 일본의 정치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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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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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구 도쿄 특파원
윤종구 도쿄 특파원
2006년 9월, 2007년 9월, 2008년 9월, 2009년 9월, 2010년 6월. 일본 총리가 바뀐 시점이다. 그리고 2011년 6월 총리 교체를 둘러싸고 일본 정국이 또 한 번 요동치고 있다. 자민당을 비롯한 야당은 1일 내각불신임결의안을 중의원에 제출했다. 불신임안이 가결되면 총리가 바뀐다.

지난해 6월 취임한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는 반년도 안 된 지난해 말부터 매일같이 퇴진설, 국회해산설이 나돌 정도로 흔들렸다. 동일본 대지진으로 한숨 돌렸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세상에서 가장 안정된 나라라는 일본이 정치만큼은 하루도 바람 잘 날 없다는 게 신기하기까지 하다. 야당이 눈만 뜨면 ‘언제 총리를 끌어내릴지’ 궁리하는 것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여당의 상당수 의원도 야당이 제출한 내각불신임안에 동조하고 있다. 불신임안의 가결 부결 여부는 중의원 표결 결과를 봐야 알겠지만 진행 양상은 지난해 꼭 이맘때 물러난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전 총리의 사퇴 과정과 빼닮았다. 당시 하토야마는 야당과 일부 여당의 협공을 견디다 못해 자진 사퇴했다.

민주당 정권의 대주주 구성을 보면 애초 안정된 정국운영은 무리라는 생각도 든다. 간 총리와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전 간사장, 하토야마 전 총리는 민주당의 ‘빅3’로 불린다. 간과 하토야마는 1996년 구 민주당을 함께 창당한 ‘창업 동지’이고, 오자와는 2003년 민주당에 합류한 뒤 일거에 최대주주가 됐다. 이후 당은 ‘삼두체제’의 연대와 경쟁에 좌우됐다. 2009년 8월 정권을 잡기 직전 최고 실력자였던 오자와가 정치자금 문제로 대표직에서 물러나고, 하토야마가 어부지리로 총리가 됐다. 하지만 오자와는 막후에서 총리보다 큰 권력을 행사했고, 결국 하토야마는 ‘리더십 부족’ ‘무능 총리’라는 오명을 쓰고 물러났다. 후임을 소수파 연합의 지원을 업은 간 총리가 차지했지만 오자와의 공격 앞에서 늘 불안할 수밖에 없다. 하토야마는 수시로 협력 파트너를 바꿔 왔다.

문제가 여기까지라면, 정권의 인적구성을 쇄신해 정국안정을 꾀할 수도 있다. 하지만 2006년 이후 해마다 총리를 바꿔봤지만 늘 정치가 불안했다. 간 총리가 이번에 바뀌어도 정치안정은 요원하다는 게 일본 정가와 언론의 일치된 견해다. 일본 정치체제 자체가 근본적인 불안정 요소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간 총리가 물러나고 민주당에서 새 총리를 내세운다고 해도 ‘상원’ 격인 참의원의 여소야대는 변함없다. 설령 국회 해산과 총선거로 자민당-공명당 연립정권이 들어서더라도 참의원은 여소야대다. 현재 참의원엔 과반수 정당이 없기 때문에 늘 ‘야당 연합’이 지배하는 구조다. 지금과 같은 다당제에서는 앞으로도 이런 의석구도가 바뀔 가능성이 별로 없어 보인다. 오래전부터 중의원 다수당이 배출하는 총리는 참의원 여소야대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했다. 6년 임기가 보장되는 참의원은 총리의 해산권 밖에 있다.

중의원을 3분의 2 가까이 차지한 압도적 다수당이면서도 간 나오토 내각이 법안 하나 마음대로 처리할 수 없는 ‘식물 정권’이 된 것은 이 때문이다. 게다가 온갖 계파로 갈라진 일본 정치의 특성상 총리가 리더십을 발휘할 재간이 없다. 최근 몇 년간 일본 총리는 취임 직후부터 ‘적어도 역사에 남는 단명 총리는 되지 않아야 할 텐데’라는 걱정에 좌불안석이었다.

결국 기댈 곳은 권력보다 국익을 먼저 생각하는 정치인의 양식이지만, 1000년 만의 대지진을 맞고도 권력싸움에 골몰하는 이들에게는 무리한 기대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윤종구 도쿄 특파원 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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