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왜관 고엽제’ 조사·배상·복원 제대로 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5월 21일 03시 00분


주한미군 병사 출신 3명이 자신들이 근무했던 경북 칠곡군 왜관읍 캠프 캐럴에 독극물인 고엽제 250드럼을 묻었다고 미국 방송을 통해 폭로했다. 이들은 33년 전인 1978년 “폐기할 것이 있으니 땅을 파라”는 상관의 명령에 따라 고엽제를 묻고 나서 만성 관절염, 청각장애, 당뇨병을 앓게 됐다고 밝혔다. 이 소식을 접한 왜관 지역 주민은 지하수나 인근 낙동강 식수원, 농토가 고엽제에 오염되지 않았을지 불안해하고 있다. 고엽제를 묻었다는 정확한 위치를 알아내 우선 사실을 확인하는 작업이 급하다.

정부는 왜관의 고엽제 매몰을 심각한 사태로 보고 어제 긴급 대책회의를 열어 전담 팀을 구성했다. 미군 측은 한국 정부가 공동조사를 요구하면 적극 협력하겠지만 고엽제 매립에 관한 기록은 아직 찾아내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고엽제 매립의 진상과 생태계 오염 여부를 신속하고 투명하게 밝혀내지 못할 경우 자칫 반미 감정을 자극할 우려가 있다. 미국 정부도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감안해 사태 수습에 최대한 성의를 보여야 할 것이다.

고엽제는 미군이 베트남전쟁 때인 1960년대 초부터 약 10년간 밀림을 제거해 공산 게릴라의 출몰과 군수(軍需) 보급을 막기 위해 살포한 제초제다. 고엽제에는 각종 암을 일으키고 신경을 마비시킬 수 있는 다이옥신이 함유돼 있다. 1994년 베트남 정부는 자국의 참전군인과 민간인 200만 명이 고엽제 후유증을 겪고 있다고 공개했다. 우리 베트남 참전 용사 중에도 고엽제 후유증을 앓고 있는 환자가 무려 3만5000명에 이른다.

미국 방송의 보도에 따르면 왜관에 묻은 고엽제는 베트남전에서 쓰고 남은 것을 국내에 반입했을 가능성이 높다. 드럼통에 ‘베트남 지역, 콤파운드 오렌지’ ‘1967년 베트남’ 등 고엽제를 뜻하는 오렌지색 글씨가 적혀 있었다고 한다. 미군은 1960년대 말 북한군의 침투를 막기 위해 비무장지대(DMZ) 남쪽 지역에 고엽제를 뿌린 적도 있다.

캠프 캐럴은 낙동강에서 불과 2km 떨어진 곳에 있다. 지금까지 이곳에서 고엽제 성분이 검출됐다는 조사 결과가 나온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안전을 자신할 수는 없다. 미군기지 영내는 물론이고 인근 지역의 환경오염 여부를 광범위하게 정밀 조사해야 한다. 주민에 대한 역학조사를 벌여 건강상태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주민 피해와 환경오염이 드러날 경우에는 치료와 배상, 환경 복원에 이르기까지 미국이 책임을 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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