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정훈]‘납치의 왕국’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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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13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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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비정부 기구인 북한인권위원회가 12일 ‘북한이 6·25전쟁 이후 12개국에서 18만여 명을 납치했다’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18만여 명 중에는 북송 사업을 통해 일본에서 건너간 총련 교포 9만3000여 명과 6·25전쟁 때 끌려간 납북자 8만2000여 명이 포함돼 있다. 북한인권위원회는 이들 이외에도 5000여 명이 북한에 납치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2005년 6월 금강산면회소에서 북이 납치해간 고교생을 남북 혈육상봉장에 등장시킨 ‘정치 쇼’가 벌어졌다. 1978년 군산기계공고 1학년생으로 군산 선유도로 놀러갔다가 북한 공작조에 납치된 김영남 씨가 28년 만에 남한의 어머니를 만났다. 김 씨의 피랍은 1997년 한국에서 검거된 간첩 김광현이 1978년 남파 공작 임무를 끝내고 돌아가다가 선유도 해상에서 고등학생을 납치해간 적이 있다고 진술함으로써 확인됐다. 김 씨는 대남(對南) 요원으로 육성돼 어머니를 만날 때는 조선노동당 국장급 간부로 있었다. 김 씨가 어머니를 위해 팔순상을 차리고 산삼과 비단을 선물하자 북한 기자들은 기다렸다는 듯 촬영했다.

▷1977년 일본 니가타 현에서 중학교 1년생인 요코다 메구미가 북한에 납치됐다. 요코다 씨는 남한에서 납치된 김영남씨와 1986년 결혼했다. 이 사실이 1996년 탈북한 안명진 씨에 의해 알려지면서 요코다 씨는 납북 일본인의 상징이 됐다. 일본에서는 요코다 씨의 송환을 요구하는 여론이 확산됐다. 궁지에 몰린 북한은 요코다 씨가 1993년 사망했으며 남편 김영남 씨는 1997년 북한 여성 박춘화 씨와 재혼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2005년 금강산면회소에 김영남 박춘화 씨 부부를 보내 김 씨의 어머니와 상봉하게 하는 쇼를 연출한 것이다.

▷이 보고서에는 수도여고 교사로 활동하던 1979년 노르웨이에서 납북된 고상문 씨, KAL기 폭파범 김현희 씨에게 일본어를 가르친 다구치 야에코 씨, 1987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재학생으로 오스트리아를 여행하다 납북된 이재환 씨 등의 사연이 들어 있다. 공교롭게도 한국과 일본이 피랍자 문제를 제기한 뒤 북한에 납치되는 사례가 줄어들었다. 북한인권위원회는 미국 의회가 제정한 북한인권법 덕분에 미국 국립민주주의기금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이 보고서를 만들어냈다. ‘납치의 왕국’ 북한에 제동을 걸기 위해 우리 역시 북한인권법 제정을 서둘러야 한다.

이정훈 논설위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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