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중형 가하라’ 말하던 장준하 선생의 모습 잊지못해”

  • Array
  • 입력 2011년 4월 26일 03시 00분


코멘트

법의 날 국민훈장 받은 류택형 변호사

25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찰청 대강
당에서 열린 제48회 ‘법의 날’ 기념식에서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은 류택형 변호사
가 기념식을 지켜보고 있다. 법무부 제공
25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찰청 대강 당에서 열린 제48회 ‘법의 날’ 기념식에서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은 류택형 변호사 가 기념식을 지켜보고 있다. 법무부 제공
신군부가 집권한 5공 정권 시절인 1985년 인권변호사 고 조영래 씨와 함께 죽음을 무릅쓰고 인권보고서와 고문사례집을 만든 사람이 있다. 고 윤보선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롯해 고 함석헌 장준하 선생, 박정희 전 대통령을 저격한 고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등 한국 현대사에 한 획을 그은 사람들을 앞장서서 변호한 류택형 변호사(82)가 그 주인공이다. 제48회 법의 날을 맞은 25일 그는 정부로부터 법률문화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류 변호사는 이날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설립된 지 30년이 다 됐던 대한변호사협회에 인권보호센터 하나 없는 현실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며 인권보고서와 고문사례집을 펴내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이후 류 변호사는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닌 끝에 아시아 소사이어티에서 후원을 받고 조영래 변호사를 추천받아 함께 인권보고서와 고문사례집을 출간했다. 류 변호사는 “당시 정보부에서 책을 못 만들게 방해해서 제주도로 도망간 적도 있다”며 “당시 머리도 빗지 않아 털털한 모습으로 사람 좋게 웃던 조 변호사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고 말했다.

류 변호사는 대한민국 현대사의 핵심 사건을 변호하던 1960∼1970년대를 하나하나 떠올렸다. 당시는 인권이란 개념이 정립되지 못했던 시절. 류 변호사는 “특히 장준하 선생이 재판을 받던 모습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술회했다. 법정에 유일하게 변호인으로 들어갔던 류 변호사는 “장준하 선생은 ‘헌법을 개선하라는 청원권은 국민이 가진 헌법상 권리’라고 말하며 재판장에게 ‘(당연한 주장을 하는 나에게 벌을 주려면) 중형을 가하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그 양반 아주 대단했다”고 말했다.

고 박정희 대통령과의 기억도 있다. 당시 박 대통령은 류 변호사가 평소 율곡 이이 선생을 존경해 서울 종로구 적선동에 율곡회관을 지으려는 것을 안 뒤 ‘율곡회관’이라는 글씨를 선물했다. 류 변호사는 또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장으로 일할 때 박 대통령 측에서 공화당 서울 성북지구당 위원장을 맡아달라고 요청했으나 이를 거절해 박 대통령이 노발대발했다”고 웃으며 말했다.

류 변호사는 또 1987년 2월 7일 ‘고 박종철 군 추모회’에 참석한 뒤 연좌농성을 벌인 혐의로 노무현 당시 변호사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됐을 때 급히 부산으로 비행기를 타고 내려가 석방을 위해 동분서주하기도 했다. 그는 “그 후에 노 전 대통령이 동료들과 와서 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나간 뒤 잠시 후 다시 들어와 ‘다음 번에 내가 구속되면 나를 꺼내주지 마라. 앞으로 나도 민주화를 위해 생명을 버리겠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류 변호사는 “인권에 대한 관심은 변호사의 가장 큰 덕목”이라며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말이 사라지지 않는 현실에서 우리의 치열한 자기반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장관석 기자 jks@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