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정재락]의사에게 유독 약한 경찰…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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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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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락 사회부 기자
정재락 사회부 기자
13일 오후 울산지방경찰청 수사2계 사무실. ‘제약사 리베이트’를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는 의사 200여 명을 수사하는 곳이다. 하지만 피의자 조사용 접이식 철제 의자들은 벽 쪽으로 세워진 채 조사를 받는 의사는 아무도 없었다. 마치 수사가 끝난 듯한 한산한 분위기였다.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경찰은 자못 비장했다. 7일 오전 10시 울산지방경찰청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서상완 수사2계장(경정)은 제약사에서 총 6100만 원의 리베이트를 받은 혐의(뇌물수수)로 공중보건의 3명을 입건한 수사 결과와 함께 전국의 의사 1000여 명이 국내외 15개 제약사에서 리베이트를 받은 사실도 발표했다. 그러면서 “공무원 신분인 공중보건의와 국립병원 의사에게는 뇌물수수 혐의를, 종합병원 전문의에게는 배임수재 혐의를 적용해 처벌하겠다”며 강한 수사 의지를 드러냈다. 리베이트 흐름도와 입출금 내용도 취재진에 공개했다. 이 사건은 지난해 11월부터 리베이트 적발 시 의사와 제약업체 양쪽 모두 처벌하는 ‘리베이트 쌍벌제’가 시행에 들어간 이후 첫 수사여서 전국의 이목을 끌었다.

그러나 경찰의 강력한 수사 의지는 바람 빠지는 풍선처럼 날이 갈수록 쪼그라들었다. 수사 방법도 특혜 논란이 일 정도로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경찰은 소환 통보를 한 의사들이 수술과 학회 참석 등을 이유로 출석을 미루자 e메일로 조사했다. 또 변호사가 대신 답변서를 갖고 와도 받아주고 일과시간 이후에 출석하도록 배려했다. 조사 과정에서 언론의 접근도 철저히 차단했다. 심지어 경찰은 당일 소환한 의사가 몇 명인지도 확인해주지 않고 있다.

의사들은 ‘자문료와 신약 시판 후 조사(PMS) 등으로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범위 안에서 제약사로부터 경제적 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의료법의 단서 조항을 근거로 불법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사건에 연루된 의사들을 모두 불법행위를 저지른 사람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경찰이 언제부터 ‘생업이 바쁜 피의자’를 e메일로 조사하거나 ‘일과 후 조사’ 등으로 배려했는지, 일반 서민에게도 이러한 배려를 과연 해왔는지 자문해봤으면 한다.

제약사가 의사에게 건네는 리베이트는 결국엔 약값에 반영돼 환자의 부담으로 고스란히 전가된다. 사회적 약자인 돈 없는 환자를 울리고 일반 환자들에게도 ‘바가지를 씌우는’ 범죄인 셈이다. 경찰은 이제부터라도 초심으로 돌아가 이번 리베이트 사건을 철저하게 수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의사에게, 나아가 힘 있는 자에게 유독 약한 경찰’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울산에서

정재락 사회부 rak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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