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남 얘기 하듯이 하는 한나라당 위기론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4월 8일 03시 00분


어제 한나라당 최고위원 회의에서 충청 출신인 박성효 최고위원이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의 분산 배치설과 관련해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느냐”며 이명박 대통령의 ‘인품’까지 거론했다. 김무성 원내대표가 “뭘 그렇게 함부로 하고 있어”라고 말을 가로막았고, 안상수 대표는 “최고위원이 자기 지역 얘기만 하면 뭣 때문에 앉아 있나, 사퇴하든지”라고 핀잔을 줬다. 홍준표 최고위원도 “너무 심했다”고 거들었다.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회의는 곧바로 비공개로 전환됐다. 안 대표는 “이거 봉숭아학당도 아니고”라며 한숨을 쉬었다고 한다. 이들에게 과학벨트 문제의 해법을 기대할 수 있을까.

김무성 원내대표는 5일 당 의원총회에서 “정권에 신뢰의 위기가 왔고, 국책사업으로 인한 우리끼리의 갈등이라는 위기도 있다”면서 “큰 위기가 엄습해 오고 있는 걸 느낀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구제역 전세난 물가 등 경제와 민생(民生) 문제에서 한나라당의 역할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날 의원총회에서는 사소한 문제로 일부 의원들이 얼굴을 붉히며 주먹다짐 직전까지 가는 설전이 벌어졌다.

과학벨트를 놓고는 충청권과 비충청권, 동남권 신공항을 놓고는 수도권과 영남권, 영남권 안에서도 부산과 그 밖의 지역 출신 의원들 사이에 갈등만 있지, 여당 차원의 조정 기능은 실종된 상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신들의 일터인 국회 본회의 일정을 빼먹으며 지역구에서 살다시피 하는 의원들이 늘고 있다. 내년 총선 전망을 어둡게 보고, 특히 수도권 의원들을 중심으로 ‘나만이라도 살자’는 각자도생(各自圖生)에 분주한 모습이다. ‘구(區)의원 수준’이라고 스스로 비웃을 정도다.

위기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취약한 리더십과 정치 전략의 부재, 국가적 비전을 구현하겠다는 사명감과 희생정신 결여, 민생에 대해 진정으로 고뇌하지 않는 이기적 웰빙 체질, 그리고 무기력증과 자중지란(自中之亂)이 겹친 것으로 보인다. 위기를 말하는 사람들도 남 얘기 하듯이 하고 있다. 스스로 희생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명색이 집권당이라는 한나라당 소속 의원들은 18대 총선 이후 지난 3년간 국민을 위해 진정으로 땀을 흘려본 적이 있는지, 민생 깊숙한 곳에서 국민과 고통을 함께 해본 적이 있는지부터 자문(自問)해 볼 일이다. 위기는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로부터 비롯됐음을 깨달을 때에만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있는 길도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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