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미술시장 비리 누가 온존시키나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4월 6일 03시 00분


정부 고위공직자와 국회의원의 재산 목록에 공개되는 미술품은 시가(時價)보다 낮게 신고하는 경우가 많다. 이명박 대통령은 김창열 화백의 1970년대 물방울 그림 30호짜리를 700만 원이라고 신고했다. 이 그림은 실제 3000만∼4000만 원을 호가한다. 미술품은 이처럼 객관적인 가격을 매기기가 어렵고, 거액의 그림을 사고팔더라도 은밀히 거래하면 파악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탈세나 로비, 비자금 조성 수단으로 종종 이용되고 있다. 최근 검찰 수사 과정에서 미술품 거래를 통한 비리와 불법 사실이 잇따라 드러나면서 미술시장에도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검찰은 오리온그룹 계열사가 서미갤러리와 수백억 원대의 미술품 거래를 하면서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한 단서를 확보했다. 한상률 전 국세청장은 차장 재임 시절 전군표 당시 청장에게 서미갤러리에서 산 그림을 상납했다는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부산2저축은행에서는 대주주인 은행장이 그림의 담보 가치를 과다하게 평가해 아들에게 부정 대출을 해준 것으로 드러났다. 자식에게 부동산을 넘겨주면 많은 세금을 내야 하지만 미술품을 주면 세금을 피할 수 있어 변칙적인 상속과 증여 수단으로도 악용된다.

미술시장이 비리의 수단으로 변질되는 일을 막기 위해서는 미술품이 실명으로 거래되도록 서둘러 제도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 미술품 양도차익 과세는 미술시장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이유로 계속 미뤄져 왔다. 정부는 1990년부터 이 제도를 추진했으나 2008년 소득세법에 그 내용을 포함시키고도 부칙을 통해 2011년 시행으로 유예했고, 지난해 다시 2013년으로 연기했다. 조세 원칙상 미술품이라고 해서 과세 대상에서 예외가 될 수는 없다. 미술시장의 각종 비리가 드러난 이상 양도세 과세를 더는 미뤄서는 안 된다. 상속 탈세 등을 위해 미술시장 비리를 온존시키려는 세력이 로비를 통해 관련 법규 도입을 막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국세청은 미술품 거래에 대한 전문성을 갖추고 거래 자료를 축적하는 등 감시 체계와 능력을 높여 나가야 한다.

우리도 중산층 가정에 미술품이 걸리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선진국에는 미술 경매시장이 발달돼 있다. 미술품이 경매를 통해 더 많이 거래되도록 지원하면 관련 당국이 거래 사실을 바로 파악할 수 있고 미술시장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도 도움이 될 것이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