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송상근]형제의 길, 仁術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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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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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상근 교육복지부 차장
송상근 교육복지부 차장
만삭의 의사부인 사망사건을 다룬 ‘그것이 알고 싶다’(SBS)를 지난 주말에 인터넷으로 봤다. 프로그램 중간에 이윤성 서울대 의대 교수가 나왔다.

그는 국내 법의학계의 권위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촉탁의, 대한법의학회 부회장을 지내면서 24년간 법의학 분야에 정진한 공로로 지난해 11월 경찰청으로부터 과학수사 대상을 받았다. 국방부 군의문사특별조사단 자문위원과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했다.

왜 법의학을 전공했을까. 마침,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던 날의 조간신문에 인터뷰가 실렸다.

‘서울대 의대 본과 2학년 때 우리 형이 고려대 의대 본과 4학년이었어요. 형이 당시에 고려대 법의학 교수셨던 문국진 선생님 강의를 들었어요…집에 와서 하는 말이 법의학이라는 게 있는데 폼 나더라 해요. 그래서 제가 도서관에 가봤더니 법의학 책이 꽤 있더라고요. 읽어봤더니 재미있어요. 그리고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분야더라고요.’

기자는 국방부를 담당하던 1998∼2000년, 이 교수의 도움을 받았다. 판문점에서 근무하던 육군 장교의 사인(死因)을 놓고 의혹이 쏟아지던 상황에서 차분하고 합리적인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그에게 법의학을 언급했던 형은 고려대 의대의 이인성 교수이다. 이윤성 교수가 전문가적 식견으로 취재의 방향을 잘 잡아줬다면 이인성 교수는 흉부외과 의사로서 기자의 허약한 심장을 튼튼하게 만들어줬다. 1993년 수술대에 누웠을 때 집도의였으니까. 10년 뒤에는 보건복지부 출입기자와 대한의사협회 기획정책이사로 만나는 인연으로 이어졌다.

형은 흉부외과 진료실을, 동생은 법의학 교실을 지킨다. 인기 없는 길을 형제가 걸어온 셈이다.

법의학부터 보자. 드라마 ‘싸인’으로 관심이 높아졌지만 현실은 척박하다. 이 교수는 동아일보 칼럼을 통해 △한국에는 해마다 3만6000건의 검시(檢屍) 대상이 있다 △이 가운데 1만2000건이 부검 대상인데 실제 부검은 매년 6000건 정도다 △검시 전문가는 300명이 필요하지만 현재는 40명 정도라고 지적했다(2010년 11월 18일 A35면).

흉부외과는 어떤가. ‘의학의 꽃’으로 불렸지만 요즘 젊은 의사들이 가장 기피한다. 의료수가를 올리고 근무여건을 개선하면서 서울의 유명 대학병원은 지원자가 최근에 늘었을 뿐 지방은 여전히 부족하다.

반면에 돈이 되는 진료과목은 날로 성업 중이다. 성형외과 피부과 치과 간판이 도심의 대형빌딩 겉면을 도배한 모습이 이런 현실을 잘 보여준다. 성형외과 2, 3곳이 같이 들어선 건물도 적지 않다. 일반외과나 정형외과는 찾기 힘들다.

터무니없이 부족한 부검의, 명맥을 간신히 이어가는 흉부외과,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응급실…. 계산기를 두드리면 답이 나오지 않더라도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분야가 몇 가지 있다. 보건의료정책의 순위를 매기고 재원을 투입할 때 우선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석해균 삼호주얼리호 선장을 치료했던 이국종 아주대병원 교수의 말이 머리에 남는다. “중증외상환자에 대한 응급의료 체계에 관한 한 오만은 우리보다 훨씬 선진국이다.” 세계 11위 경제대국이라는 한국의 의료현실을 정부와 국회와 의료계가 함께 반성하고 개선할 시점이다.

송상근 교육복지부 차장 song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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