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선희]‘인간의 얼굴을 한 市場’에 대한 고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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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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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희 경제부
박선희 경제부
“이렇게 참혹한 사건 앞에서 경제 효과를 분석해야 한다는 게 안타깝습니다.”

11일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이 국내 증시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취재하기 위해 기자가 전화 인터뷰한 증권가 애널리스트들은 공통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들은 일본 대지진이 각국 증시나 경제에 미칠 이해득실을 언급하기 전에 “일본의 불행이 남의 일 같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한 애널리스트는 대지진 소식에도 미국 증시가 상승 마감하고, 그 다음 날 아시아 주요국 증시가 오름세를 보인 현상에 대해 “시장은 참 냉정하지 않습니까” 하고 되묻기도 했다. 자연의 습격에 손쓸 틈 없이 무너진 도시와 수만 명의 희생자들을 놓고, 경제 효과나 반사이익 등을 먼저 얘기해야 하는 것에 대한 인간적 고충 때문이었을 것이다.

대지진 이후 일본 경제가 글로벌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이전 같지 않고, 일부 산업의 피해가 경쟁관계에 놓인 다른 기업들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금융시장은 정말 냉정히 반응했다. 누군가는 이를 ‘잔인한 상승’이라고 표현했다. 지진 발생 직후 각 증권사들은 지진이 불러올 파급 효과 예측과 함께 반사이익, 수혜주 등을 찾는 데 분주했다. 하지만 일본의 피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한 것으로 드러나자 경제논리와 분석적 사고에 누구보다 익숙한 애널리스트들도 당황하기 시작했다. 한범호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15일 투자전략 보고서에서 “이번 지진으로 물질적, 심리적 고통을 겪고 계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위로를 드린다. 피해의 최소화와 빠른 복구를 통한 정상적인 일상으로의 복귀를 기원한다”고 적었다. 신현준 동양종금증권 연구원도 “증권시장에서 일본 대지진의 수혜주를 찾느라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갑작스러운 대재난으로 고통받고 있는 이웃나라에 도움의 손길을 나눠줄 수 있는 이야기도 활발하게 나눴으면 한다”고 했다. 건조하고 객관적인 문장과 수치로 증시전망과 투자전략을 논하는 증권사 리포트가 이런 인간적 감정을 녹이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금융자본주의의 최전선인 금융투자업계는 우리 시대 가장 치열하면서도 비정한 적자생존의 장이기도 하다. 애널리스트들의 개인적인 갈등과는 별개로 역대 최악의 참사 중 하나로 기록될 동일본 대지진이 미치는 영향을 경제적 시각에서 조명하고 분석하는 것은 분명 필요한 일이다. 수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대참사 앞에서 갈등하는 애널리스트들의 모습에서 새삼 ‘인간의 얼굴을 한 시장’이 어떤 것인가 고민해 본다.

박선희 경제부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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