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대기업의 中企 기술탈취 엄벌 마땅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3월 12일 03시 00분


중소기업 ㈜슈버는 1999년 폴더형 휴대전화 자동개폐장치 개발에 성공해 2001년부터 삼성전자에 납품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그해 말 슈버와 거래를 끊고 부품을 계열사인 삼성전기에서 납품받기 시작했다. 특허심판원은 2005년 ‘삼성전기가 슈버의 특허를 침해했다’는 결정을 내렸지만 그 사이 슈버는 부도가 났다. 모바일콘텐츠 개발업체인 서오텔레콤은 휴대전화로 구조요청 전화를 쉽게 걸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2004년 LG텔레콤(현 LG유플러스)이 비슷한 방식의 서비스를 시작하자 서오텔레콤은 특허침해 소송을 냈고 2009년 최종 승소했다.

2009년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 결과 대기업으로부터 기술 자료를 요청받은 중소기업 가운데 22.1%가 기술탈취나 유용을 경험한 것으로 드러났다. 슈버나 서오텔레콤처럼 ‘사건’을 터뜨리는 중소기업은 드물다. 대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내는 것은 달걀로 바위 치기만큼 무모하다. 공정위가 대기업에 조사를 나가는 즉시 대기업으로부터 ‘거래 중단’ 압박이 들어온다. 결국 분쟁에서 이기고도 속으로는 골병이 든다.

하청업체의 기술을 가로챈 대기업이 피해액의 최고 3배를 배상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하도급법) 개정안이 어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해외의 특허는 로열티를 주고 사오면서 국내 중소기업의 기술은 마구 갖다 쓰는 대기업에 대해서는 중요 범죄로 다스려야 한다. 지난해 중소기업이 기술을 탈취당해 입은 손해액이 건당 19억3000만 원으로 조사됐다. 대기업들은 법 개정에 대해 “내년 총선을 겨냥한 여야 정치권의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의 산물”이라고 비난하고 있으나 떳떳하지 못한 둘러대기다. 정부는 중소기업들이 대기업의 횡포에 맞서 특허기술의 권익을 지키는 것이 가능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반면 시장경제 원칙에 어긋날뿐더러 기업의 자율적 상생 실천에도 맞지 않는 ‘대기업 초과이익 공유제’는 정부가 공식적으로 철회하는 것이 옳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기업가 집안에서 자랐고 대학에서 경제학 공부를 했는데 그런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을 삼갔던 이 회장이 작심하고 한 말처럼 들린다. 기업현장을 잘 모르는 학자의 설익은 아이디어를 어설프게 적용하려 들면 부작용만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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