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성희]재벌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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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8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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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수저 물고 나왔으면 그런 집안에서 태어난 데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야지.” 드라마 ‘시크릿가든’에서 길라임에게 푹 빠져있는 아들 김주원을 향해 어머니 문분홍 여사가 던지는 대사다. 잘 생기고, 학벌 좋고, 돈 많은 재벌가 자제도 나름대로 의무를 지키고 고민을 해야 한다는 훈계 같다. 말끝마다 ‘사회지도층’을 들먹이며 가난한 사람을 업신여기는 김주원이 너무 멋져 시청자들은 갈등을 느낀다. 김주원은 사회적 지탄을 받는 ‘왕재수’여야 하는 것 아닌가.

▷재벌을 소재로 한 TV 드라마가 쏟아지고 있다. 대서양그룹 일가를 배경으로 한 ‘욕망의 불꽃’을 방영 중인 MBC는 새 재벌 드라마 ‘로열패밀리’를 내보내고 있다. 가난한 집안 출신이라는 이유로 시댁인 JK그룹 일가로부터 멸시를 당하던 둘째 며느리(염정아)가 남편 사후에 경영권을 장악해가는 내용이다. SBS의 ‘마이더스’는 재벌가 후처의 딸 인혜(김희애)가 본처의 아들을 밀어내고 그룹을 맡아가는 과정의 암투를 다룬다. 재벌과 불륜은 한국 드라마의 단골소재라고 하지만 요즘 떴다 하면 재벌 드라마다.

▷편법 상속과 탈세, 자식들 간 경영권 암투, 정치권 로비, 직원 폭행 등 드라마에서 다뤄지는 에피소드를 보며 기시감(旣視感)을 느끼는 국민이 많다. 최근에도 최철원 전 M&M 대표의 ‘맷값 폭행’, 경영권 승계를 위해 동서와 친척들의 불륜을 캤던 모 그룹 맏며느리사건이 있었다. 그동안 일부 재벌이 사회적 물의를 빚은 사건들이 드라마 소재로 활용되는 느낌이다. 재벌가가 대중 관심의 표적이 되는 것은 그들로선 불편하더라도 감수해야 할 운명 같은 것이다.

▷재벌은 사람들이 되고 싶고, 닮고 싶은 ‘워너비(Wannabe)’인 동시에 질투의 대상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재벌은 외국과 같은 ‘슈퍼 리치(Super rich)’ 정도가 아니라 로열패밀리 같은 특권 계급으로 인식된다. 구중궁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싶은 것처럼 현대사회 부와 권력의 아이콘인 재벌의 사생활이 시청자들은 궁금하다. 재벌의 일탈 행위에 거센 비판을 하면서도 웅장한 저택에서 벌어지는 욕망과 배신의 드라마에 탐닉하는 현상은 재벌에 대한 시청자의 이중적 의식을 반영한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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