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판사가 이토록 썩었나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3월 7일 03시 00분


법원 파산부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법정관리 신청 기업이 폭발적으로 늘면서 생겨났다. 수많은 근로자의 일자리가 걸린 법정관리기업의 관리인을 임명하고 기업의 회생 변제 매각을 결정하는 파산부 판사는 해당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나 마찬가지다. 2000년대 초 서울중앙지법 파산부는 법정관리 대상 기업의 총 자산 규모가 30조 원이나 돼 ‘재계서열 5위’라는 말까지 나왔다.

광주지법 파산부 선재성 수석부장판사가 자신의 친형과 고교 동기동창 변호사를 법정관리기업의 감사나 관리인으로 선임한 사실이 드러나 대법원이 감사에 나섰고 검찰도 위법 사실이 있는지 내사 중이다. 선 판사는 호남지역 건설업체들의 연쇄 부도로 자산 규모가 1조 원이 넘는 기업을 관장했다. 그는 올 1월 증권회사 지점장 출신인 친형을 자신이 담당한 법정관리기업 2개의 감사로 임명했고, 고등학교 친구인 변호사에게 법정관리기업 3개의 감사를 맡겼다. 법조계에서 ‘전관예우(前官禮遇)’보다 ‘고교동창 예우’가 더 잘 통한다는 말이 있다더니 빈말이 아니었다.

선 판사는 자신의 전직 운전기사를 후배 판사에게 법정관리인으로 추천하기도 했다. 그는 법정관리인 내정 과정에서 금품이 오갔다는 진정 사건에도 연루돼 있다. 누구보다도 공정성 투명성 윤리의식이 요구되는 파산부 판사가 법정관리기업들을 주머니 속 물건처럼 마음대로 주무른 것이다. 자신이 소유한 기업이고, 자기 돈으로 월급을 주는 기업이었다면 이렇게 허술하게 사람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 지역에서 계속 근무한 이른바 향판(鄕判)에게 파산부를 맡겨 놓으면 법정관리기업의 비리를 부르기 쉽다. 선 판사는 1990년 이후 광주·전남 지방에서만 근무한 전형적인 향판이다. 향판은 지연 학연으로 얽혀 있는 지역 법조인들과의 유착 가능성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대법원 규칙에는 지방법원에 회생기업 관리위원회를 설치하게 돼 있다. 하지만 서울 이외의 지방법원에는 인력과 예산 문제를 이유로 관리위가 설치되지 않아 파산부의 전횡이 가능하다는 시각도 있다. 대법원은 광주지법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도 비슷한 사건이 없는지 감독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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