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신석호]“김정일 위원장, 문제는 휴대전화가 아니고 인플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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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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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호 정치부 기자
신석호 정치부 기자
아프리카의 작은 나라 튀니지에서 시작된 중동과 아프리카의 민주화 혁명이 이집트를 넘어 이란과 리비아, 중국으로 번지자 북한 지도부도 마음이 편하지 않은 것 같다. 국가안전보위부가 주민들의 휴대전화 사용을 엄격히 막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군부의 탱크가 평양 시내에 주둔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등 북한 지도부는 휴대전화를 통한 정보의 유통을 막고 ‘여차하면 탱크로 밀어버리겠다’고 주민들을 위협하면 지구촌에 들불처럼 번지는 민주화의 물결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이는 최근 민주화 사태의 본질을 잘못 판단한 것이다.

외교통상부 당국자는 최근 브리핑에서 “이집트 등의 민주화를 촉발한 근본 원인은 정치가 아닌 경제”라고 말했다. 2008년 11월 미국에서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선진국들이 돈을 찍어 내 위기를 모면했지만 그 결과 국제 상품가격이 오르면서 후진국 빈민들이 소비할 빵값이 오른 것이 화근이었다는 설명이다.

김 위원장은 오랜 ‘독재자 클럽’ 친구인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나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의 신세를 면하기 위해 주민들의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할 수 있다. 그러나 국제 물가 상승은 그가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변수다.

탱크로 주민들을 억누르려면 탱크를 움직일 기름을 넣어야 하고 운전병을 배불리 먹여야 한다. 북한은 중국이 무상으로 지원하는 일부를 제외한 거의 모든 원유와 매년 100만 t에 달하는 식량 부족분을 국제시장에서 달러를 주고 사와야 한다.

1990년대 초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의 붕괴 원인이 국가 재정 고갈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국제 인플레이션은 ‘부패하고 비효율적인 정치경제 체제’의 천적이다. 2009년 2차 핵실험 이후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를 받고 있는 북한에는 더더욱 그렇다.

최근 민주화 바람은 북한의 향배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우선 북한 군부가 더 힘을 얻을 수도 있다. 한 당국자는 “김 위원장이 군부가 등을 돌리는 바람에 쫓겨나는 친구들을 보면서 군부에 힘을 실어주고 대외 강경책으로 돌아설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정반대로 북핵 문제를 대화로 관리하려는 미국과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지금 북한은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핵과 미사일을 안고 고사(枯死)할지, 아니면 미국과 남한 등 외부 세계와의 대화를 통해 경제적 지원을 받고 살아남을지는 오로지 북한 지도부의 정치적 선택에 달렸다.

신석호 정치부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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