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성희]시신의 ‘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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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21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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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신을 부검하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법의관들의 세계를 다룬 SBS 드라마 ‘싸인’이 방영되고 있다. 주인공인 천재 법의학자 윤지훈(박신양)과 국과수 원장 이명한(전광렬)은 각기 ‘정의’와 ‘권력’을 대변하며 사사건건 대립한다. 진실을 밝혀내는 결정적 열쇠는 바로 시신이 갖고 있다. “살아있는 사람은 거짓말을 할 수 있지만 시신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윤지훈)는 명제는 과학수사의 기본 원칙이다.

▷프랑스 범죄학자 에드몽 로카르는 “접촉하는 두 개체는 흔적을 주고받는다”고 말했다. 로카르의 교환 법칙이라고도 알려진 이 명언은 ‘모든 범죄는 증거를 남긴다’는 의미다. 범죄자가 무심코 밟았던 곳, 만졌던 것, 남긴 것은 모두 증거가 될 수 있다. 실제로 과거부터 쓰이던 지문 인식과 최근 도입된 DNA 감식은 과학수사에 비약적 발전을 가져오면서 범인 검거와 억울한 피의자의 누명을 벗겨주는 데 크게 기여했다.

▷만삭의 의사부인 박모 씨가 욕실에서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우리나라 과학수사 능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용의자인 남편은 만삭 아내가 욕실에서 미끄러져 숨졌다며 범행을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는 반면 국과수는 아내의 사인(死因)을 ‘손에 의한 목 눌림에 따른 질식사’라고 통보했다. 국과수는 의도적 살해로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경찰은 국과수 분석을 토대로 사망자 남편에 대한 구속영장을 재신청했지만 직접 증거가 부족해 사인을 둘러싼 진실 공방은 장기전에 돌입하고 있다.

▷이 사건이 관심을 끄는 것은 용의자가 인체 특성을 잘 아는 의사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의사가 용의자로 지목된 살인사건에서는 무죄가 선고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1995년 치과의사 모녀 살해사건의 범인으로 남편인 외과의사가 기소돼 1심에서 사형까지 선고받았으나 대법원에서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났다. 같은 해 아이돌 그룹 듀스의 멤버 김성재가 사망했다. 팔뚝에 26군데의 주사자국이 발견되고 치대생이던 여자친구가 사건 직전 동물용 마취제를 구입한 사실이 드러나 범인으로 지목됐으나 2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안타깝게 사망한 박 씨가 남긴 ‘싸인’을 놓치지 않고 찾아내 죽음의 실체를 규명하는 것이 경찰의 책무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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