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조성하]지구는 어머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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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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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하 여행전문기자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서울의 수은주를 영하 17도까지 끌어내린 강추위와 잦은 눈. 자연(自然)을 다시금 되돌아보게 하는 기회였다. 겨울철 눈과 추위는 당연한 기상현상. 자연 그 자체다. 그런데도 모두가 호들갑이다. 몇십 년 만, 천년 만(중국)이라던가. 그럴 만도 하다. 개나리까지 노랗게 꽃 피우는 따뜻한 겨울, 저수지가 말라붙어 생수 원조까지 받을 정도의 가뭄을 일으켰던 겨울답지 않은 겨울이 ‘정상’처럼 간주된 지구 온난화 현상에 적응되다 보니….

사실 요즘의 추위와 눈은 어린 시절, 그러니까 1960, 70년대에는 예사였지 않았나 싶다. 칼바람은 어찌나 매섭던지, 눈은 또 어찌 그리 자주 내리던지. 동네 골목에서 대나무를 구부려 만든 스키로 눈을 지쳤고 논에 물 대어 얼린 얼음판에서 노상 스케이트나 썰매를 탔다. 꽁꽁 언 한강대교 아래 얼음판 위로는 긴 장대를 양팔에 끼고 건너던 사람도 보였다. 내복과 장갑은 누구에게나 필수품이었고 삼한사온은 달력만큼 정확했다.

올겨울은 그런 옛 겨울의 모습을 닮았다. 그런데 의문이 든다. 모처럼 되돌아온 이 춥고 눈 많은 겨울이 ‘자연으로의 복귀’인지 아니면 ‘이상기후의 징후’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자연 복귀는 아닌 듯해 걱정스럽다. 눈 없고 따뜻한 겨울이 20년 이상 지속돼서다. 할리우드판 재난영화 ‘투모로우’(원제 The Day After Tomorrow)를 봤다면 이게 지구 빙하기의 전주곡이 아닐까 하는 섣부른 망상을 떠올릴 수도 있고.

덥혀진 지구, 분명 정상은 아니다. 사람에 빗대어 봐도 분명하다. 체온이 불과 1도만 올라도 인체는 상당부분 기능을 상실한다. 2도쯤 오르면 생명이 위협을 받는다. 그런데 우리의 ‘어머니 지구(Mother Earth)’는 어떤가. 2009년 기상청 ‘한반도 기후변화’ 보고서에 따르면 한반도만 해도 평균기온이 1.7도(1912년 기준)나 상승했다. 겨울도 22∼49일 짧아졌다. 지구 전체가 비슷하다(0.7∼0.8도 상승). 이번 강추위와 폭설도 온난화로 인한 북극권 공기의 팽창 여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걱정이 앞서지 않을 수 없다.

콘스탄틴 게오르규의 소설 ‘25시’에는 ‘잠수함의 흰 토끼’가 등장한다. 산소가 희박해질 경우 흰 토끼부터 죽는데 그것은 5, 6시간 후 산소 고갈로 모두 절명함을 뜻한다. 지구는 잠수함이고 인류는 잠항 중인 잠수함의 승무원이다. 잠수함 시계는 이미 25시를 향했고 흰 토끼의 호흡은 벌써부터 가쁘다. 이런 비관론이 내게는 자연스럽다. 취재차 지구 곳곳을 누비며 자주, 또 가까이서 병든 지구의 환부를 목격해서다. 매년 이맘때쯤 니세코와 묘코 고원(일본 홋카이도와 니가타 현의 스키마을)으로 철새처럼 이동하는 수천 명의 호주 스키어의 모습에서 나는 아픈 지구의 병색을 읽을 수 있다.

병든 지구를 구하는 일. 쉽지 않다. 그래도 해야 한다. ‘건강한 지구’는 미래에 물려주어야 할 ‘인류 유산’이어서다. ‘나부터, 나 혼자서라도’ 해야 한다. 이런 생각으로 십수 년 전 시작한 게 있다. 호텔에서는 큰 수건을 쓰지 않고 집에서는 난방을 최소화(평균 17도 유지)한다. 3∼4km는 당연히 걷고 출장 취재 외에는 대중교통을 선호한다. 지면에도 버스 열차패키지나 트레킹 같은 여행을 골라 소개하는 것이다. 어머니의 병구완은 자식의 도리다. 지구도 같다. 지구는 우리 모두의 어머니다.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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