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신치영]배움 열정 사라진 美 교육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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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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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살다 보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왜 미국 교육의 현실을 개탄스럽게 생각하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뉴저지 주의 한 초등학교 영어 교사인 어맨다는 방과 후에 더 바쁘다. 오후 3시경 수업이 끝나면 곧바로 과외를 하러 다녀야 한다. 어맨다는 요즘 매일 방과 후에 1 대 1 수업으로 3, 4명의 학생을 가르친다. 그에게서 일주일 두 번 과외를 받는 아이는 12명이나 된다. 어맨다가 학교 일을 끝내자마자 과외학생에게 달려가는 일은 이제 일상이 됐다. 그가 이렇게 바쁘게 사는 이유는 5만 달러가 조금 넘는 연봉으로는 주택담보대출(모기지) 원리금을 갚으며 두 아들을 키우기에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미국 내 대부분 지역에서는 현직 교사가 과외 교사로 일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박봉의 교사들에게 이를 허용하지 않으면 학교에 붙잡아 둘 수가 없기 때문이다.

투잡(two-job) 덕분에 어맨다의 생활 형편은 나아지겠지만 그가 근무하는 학교 학생들에게는 불행한 일이다. 과외수업을 받는 12명(많을 때는 16명까지 가르쳤다고 한다)의 학생을 가르치려면 준비하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을 빼앗기겠는가. 그 교사가 학교수업에 얼마나 성실할 수 있겠는가.

박봉에도 열심히 학생들을 가르치는 미국의 교사들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학교생활을 대충 하는 것 같다는 공립학교 교사들에 대한 얘기는 한국인 학부모들에게 자주 듣는 이야기다. 뉴욕에서 상사 주재원으로 일하는 한 지인은 딸이 다니는 공립학교 교사 얘기를 들려줬다. 이 학교는 테뉴어(tenure·정년보장) 교사제도가 있어서 테뉴어를 받은 교사는 아무리 불성실해도 교장도, 학부모도 어쩌지를 못한다는 것이다. 근무한 지 만 3년이 되면 테뉴어 심사를 받는데 일단 테뉴어 교사가 되면 3년간 그렇게 열심히 가르치던 교사들도 태도가 느슨해진다는 것이다. 당연히 학생들도 공부에 그렇게 적극적이지 않다. 좋은 대학이 행복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믿음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어떻든 요즘 치열하게 공부하는 미국인 학생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교사도 학생도 열의가 높지 않은데 주정부나 연방정부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교육개혁이 제대로 이뤄질 리 없다. 공립학교 경쟁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으니 오바마 대통령이 교육시스템을 걱정하는 것도 당연해 보인다.

이런 가운데 한국계 학생들의 학업 성적이 뛰어나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기자가 살고 있는 뉴저지 주 버겐카운티는 유대인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우수하기로 소문난 유대인 학생이 많이 다니는 학교의 상위권은 대부분 한국계 학생들이다. 이는 부모의 높은 교육열 때문일 수도 있고 남에게 뒤지지 않으려는 학생들의 자존심 때문일 수도 있다. 미국인 학생들은 잘 받지 않는 사교육의 힘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미국인들은 이런 한국계 학생들의 우수함을 매우 부러워한다는 점이다.

얼마 전 인터뷰를 하러 만난 ‘공감의 시대’의 저자 제러미 리프킨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교수는 배움에 대한 한국인들의 열정에 경의를 표하며 21세기에는 한국이 세계를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임을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베스트셀러 작가 맬컴 글래드웰은 자신의 저서 ‘아웃라이어’에서 미국보다 연간 수업일수가 40일 많은 한국 등 아시아의 교육을 미국이 배워야 할 대상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주입식 교육, 대학입시 위주의 교육, 창의력이 떨어지는 교육 등 해결책을 고민해야 할 문제도 많지만 배움에 대한 열정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우리가 간직해야 할 덕목이라는 사실을 외국에서 살아 보면 더 절실하게 느낀다.

신치영 뉴욕특파원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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