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육정수]헌법 낭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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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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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미국 의사당에서는 6일 하원의원 135명이 차례로 단상에 올라 4543단어로 된 헌법 전문(全文)을 80여 분 동안 낭독하는 행사가 있었다. 222년 하원 역사상 처음이다. 공화당 소속 존 베이너 신임 의장이 “우리 합중국 국민은…헌법을 제정한다”는 전문(前文)을 엄숙히 읽어 내려갔다. 이어 민주당 소속인 낸시 펠로시 전 의장이 “이 헌법에 의해 부여되는 모든 입법 권한은 연방 의회에 속하며…”라는 헌법 제1조 1절을 낭독했다. 이 행사는 베이너 의장의 제의로 성사됐다.

▷교사가 헌법 교육의 일환으로 학생들을 한 명씩 불러내 헌법을 읽게 하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우리 국회도 헌법 낭독 행사를 갖자고 하면 의원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겠다. 미 하원의 행사는 여야 의원들이 서로 다른 이념과 주장은 일단 접어두고 헌법을 읽는 동안 한마음이 됐다는 점에서 뜻깊다. ‘건국의 아버지들’이 만든 헌법 정신을 되새기고 지키겠다는 다짐에 동참한 것이다. 많은 의원이 소속을 가리지 않고 파란색 넥타이를 함께 맨 것도 의미가 있다.

▷대한민국 헌법이 공포된 63년 전, 1948년 7월 17일 우리 국회의사당에서도 감격이 넘쳤다. ‘만당(滿堂)에 감격의 일순(一瞬)’이란 제하의 당시 동아일보 기사는 ‘연일 흐리던 날씨도 맑게 개고 기름진 녹음의 새소리도 앞날의 국운을 경축하는 듯…중앙청 국회의사당에서 엄숙히 헌법 공포식이 열렸다’고 전했다. 초대 국회의장 이승만 박사가 “이 헌법이 우리 민국의 완전한 국법임을 세계에 선포한다”고 하자 국회 안팎에서 만세삼창이 울려 퍼졌다.

▷9차례의 개정 끝에 오늘의 모습을 갖춘 우리 헌법은 6·25전쟁과 군사정변, 권위주의 시대 등 험난한 헌정사에서 구겨지고 찢기면서도 우리 사회를 지탱해준 지주(支柱)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민주, 경제 번영의 바탕이 바로 헌법이다. 1988년 헌법재판소 발족 이후 우리 사회에 헌법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 반면 국회는 헌법 정신을 훼손하는 법률, 폭력, 언사를 쏟아내고 있다. 우리 국회도 미 하원의 헌법 낭독 같은 행사를 본받아 헌법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

육정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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