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차지완]재판부가 지적한 ‘현대건설 M&A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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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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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는 4일 현대그룹이 현대건설 주주협의회(채권단)를 상대로 낸 양해각서(MOU) 해지금지 가처분신청에 대해 기각 결정을 내리면서 별도로 ‘재판부의 소회’라는 글을 내놓았다. 처음엔 ‘재판부가 결정문이나 판결문을 통해 할 말을 하면 되지 왜 사족(蛇足)을 달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한 장 남짓한 분량의 소회에 담긴 메시지는 A4용지 33장짜리 결정문 못지않게 경청할 가치가 있었다.

재판부는 먼저 예비협상대상자인 현대차그룹과 언론의 의혹 제기에 쉽게 흔들리면서 자신이 세운 원칙을 번복하는 등 일관된 태도를 보이지 못한 채권단을 나무랐다. 이어 현대그룹의 책임을 거론했다. 프랑스 나티시스은행 예치금 1조2000억 원에 대해 신빙성 있는 자료를 당당하게 제출하지 못하고 여러 차례 불충분한 자료를 제출했다는 것이다. 마지막은 현대자동차그룹이었다. 예비협상대상자로서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결과에 지속적으로 의혹을 제기해 입찰 절차에 많은 혼란을 야기했다고 꾸짖었다. 결국 ‘채권단은 줏대 없이 행동했고, 현대그룹은 불신을 자초했으며, 현대차그룹은 우선협상대상자에 선정되지 못하자 훼방을 놓았다’며 세 주인공의 연기를 싸잡아 혹평한 셈이다.

재판부는 “앞으로 공적자금이 투입된 기업들의 대형 인수합병(M&A)이 있을 경우 채권단, 현대그룹, 현대차그룹처럼 행동하면 안 된다는 소중한 교훈을 주었다는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글을 맺었다.

실제 많은 M&A 전문가는 이번 현대건설 매각 과정이 국내 M&A 역사에 ‘나쁜 사례’로 남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매각 주체인 채권단이 매각에 급급해 충분히 검토하지 않고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한 것과 이성적 논리로 접근할 사안을 감정적으로 다루다 보니 현대그룹이 소송을 남발한 점은 아쉬움이 남는다. 여기에 현대차그룹의 주채권은행 예금 빼가기와 채권단의 내분 등 관객이 보기에도 민망하고 치졸한 모습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금융당국도 재판부의 질타에 부끄러워해야 한다. 금융당국은 공적자금이 투입된 기업의 매각인데도 ‘시장’을 강조하며 뒷짐만 지고 있다가 2개월간 소모적 논란을 방기했다는 지적이 나오자 뒤늦게 “승자의 저주를 막을 M&A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왕 약속했으니 서둘러 이행했으면 한다. 여기에 더해 채권금융기관도 대형 기업의 매각 절차에 허점이 없는지 점검해 개선책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번 현대건설 매각 사례는 앞으로 진행될 국내 기업의 M&A에서 두고두고 ‘나쁜 참고서’로 남게 될 것이다.

차지완 경제부 c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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