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송상근]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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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2월 7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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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솔트’를 보셨는지요. 앤젤리나 졸리가 주인공입니다. 러시아가 미국을 공격하려고 ‘DAY-X’라는 극비 프로젝트를 가동해 어린이 수십 명을 혹독하게 훈련한 뒤 침투시켜 10년 이상 대기하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 영화처럼 북한도 수많은 공작원을 한국에 잠입시켰을 겁니다. 이제는 임무를 바꾸거나 줄여도 된다고 판단할지 모릅니다. 인터넷 검색만으로 고급정보를 얻을 수 있으니까요. 몇 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 한미연합훈련 첫날인 11월 28일 연평도에 K-9 자주포의 작전수행능력을 높이기 위한 K-10 탄약보급장갑차 수 대를 배치

― 추가 도발에 대비하여 연평도에 사거리 45km의 다연장로켓(MLRS)을 증강 배치

― AN/TPQ-37 대포병 레이더가 제구실을 못했다는 지적에 따라 전방에서 북한의 장사정포를 감시하던 ‘아서(ARTHUR)’ 대포병 레이더를 연평도에 긴급 배치

북한은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한국군 동향을 실시간으로 봅니다. 포탄이 떨어진 지점과 한국군 포대 위치까지 손쉽게 파악합니다. 김정일이 당과 군의 조직을 축소한다면 정보수집 부서를 1순위에 올려도 될 정도입니다.

국방부는 1일 정례브리핑에서 “군 작전 상황이나 전력 증강 배치 등의 내용이 여과 없이 무분별하게 보도되어 군사사항이 노출되는 등 적을 이롭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국가안보를 고려한 신중하고 분별 있는 보도를 해 주실 것을 당부드린다”고 밝혔습니다.

민주당 서종표 의원은 3일 “북한에서 간첩을 남파할 필요가 없다”고 개탄했습니다. 야당도 문제가 심각하다고 본 거죠. 어제오늘 얘기는 아닙니다. 북한 잠수정이 1996년 강릉 앞바다로 침투하자 군 병력이 포위망을 구축한 곳에서 방송사가 취재하는 바람에 작전상황이 다 노출됐습니다.

국방부 출입기자들은 국가안보 군사보안의 중요성을 잘 이해합니다. 배경 설명이나 ‘오프 더 레코드’로 들은 내용을 기사화하는 경우가 거의 없지요. 문제는 군을 담당하지 않던 기자들이 연평도 포격 등 돌발 상황에 투입되면서 두드러집니다.

하나라도 더 많이, 1초라도 더 빨리 알리려고 현장에서 뛰는 언론계 선후배를 탓하려는 마음은 조금도 없습니다. 하지만 언론이 북한을 이롭게 한다면 해법을 찾아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새 지침을 만들면 어떨까요. 언론과 학계와 군이 정보공개의 범위를 논의하자는 제안입니다. 천안함 폭침 뒤 한국기자협회와 한국PD연합회가 검증위원회를 만들었을 때 민군합동조사단이 설명하고 질의 응답했던 방식을 발전시키면 됩니다.

국내외의 판례가 확인한 대로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clear and present danger)’을 기준으로 하면 합의점이 나올 겁니다. 16년간 군사 전문기자로 취재했던 대변인이 이런 역할에 적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내부의 적입니다. 도움보다는 해를 끼치는 것이 더 많습니다.” 윈스턴 처칠이 제2차 세계대전 중에 했던 말입니다. ‘그들’은 BBC를 지칭합니다. 공정성의 상징이라는 BBC조차 내부의 적으로 생각할 만큼 언론에 대한 불신이 뿌리 깊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군과 언론이 적대적 관계를 유지하면 피해는 국가나 국민에게 돌아간다는 점을 대변인이 누구보다 잘 알 겁니다. 취임 소감대로 언론과의 소통에 가교 역할을 해 신뢰받는 군이 되도록 노력하기를 기대합니다.

송상근 오피니언팀장 song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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