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박찬욱]대화와 소통의 정치, 해법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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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2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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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연평도 포격에 대한 정부와 정치권의 대응은 국민에게 실망과 불안을 안겨주었다. 다수 국민은 대통령, 청와대와 군이 북의 도발에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대처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도 안보를 더욱 튼튼히 할 것이라는 믿음을 주지 못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야당이라면 북의 명백한 도발을 규탄하는 데에 머뭇거리지 말고 단호한 태도를 표명했어야 했다.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외부 도발행위에 대해 여야가 공동보조를 취하면서 정부의 대응책임을 묻고 유사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해 힘을 모을 수는 없는지. 지난 2주일을 돌이켜보면 여야는 북한의 도발 원인과 군의 취약성을 놓고 각자의 옹호 논리에 급급하여 상대방을 탓하는 ‘비난 게임(blame game)’에 몰두했다.

국가 안위에 직결되는 긴급사태가 발생하면 정치인이 즉각 대화의 장을 마련하여 대응책을 궁리하는 것이 순리다. 원내정당 지도부가 국회에서 숙의하고 대통령과 야당 대표가 대국민 성명을 내기 전에 의사소통의 창구를 열어 사태의 심각성을 공동으로 인식하고 대처해야 지당하다. 우리 정치는 마땅히 있어야 하는 여야 사이의 대화와 소통이 실종돼 있다.

내년도 예산안의 국회 의결은 헌법이 정한 시한인 2일까지 이뤄지지 않았고 임박한 정기국회 폐회일 이전에 마무리될 것이라는 전망도 불투명하다. 4대강 사업, 무상 급식, 소득세·법인세 인하에 더하여 국방예산을 둘러싼 삭감 또는 증액 논란이 해소될 기미가 잘 보이지 않는다.

연평도 포격때 드러난 소통의 실종

예산안 처리는 결국 계수조정이므로 이견 해소의 출구 찾기가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여야 간에 말이 통하지 않는다. 여당이 야당에 양보할 낌새가 보이지 않고 야당은 거리로 나가 싸우는 모양새다. 늘 그러했듯이 여당은 강행 처리의 불가피성을, 야당은 극력 저지의 당위성을 고집할 듯하다.

여야가 합의를 이루면 실천해야 한다. 그것은 일단 말이 통해 약속이나 결정이 이루어지고 난 이후의 문제이다. 우리 정치에서는 갈등사안을 놓고 상충하는 의견과 이해의 간격을 좁히기 위한 말조차 제대로 오가지 않는다. 이러고도 선진정치로 진전할 수 있을 것인가.

“인간은 타고난 정치적 동물”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언명은 인간이 침팬지처럼 권력관계에 바탕을 둔 군거생활을 영위함을 뜻하지 않는다. 인간이 공동체 생활을 통해 개인의 최선과 공동의 선을 추구함을 의미한다. 공동선이라는 목적(텔로스)의 실현은 로고스, 즉 이성과 언어에 의하여 의견의 차이를 줄여 나가는 대화와 소통이 있어야 가능하다.

민주주의 정치는 공동체 구성원이 완력 대신에 이치를 따지는 대화로써 문제를 풀고 더불어 사는 방식이다. 토론을 통해 경합하는 입장의 접점을 모색하여 중용을 취하고 상호 간의 균형을 유지할 때에 안정적인 민주주의가 펼쳐진다. 대화와 소통을 통한 조정, 타협과 호혜는 일방적으로 굴복하거나 상실하는 것이 아니라 쌍방이 얻는 것이다. ‘숙의 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 이론에 따르면 공동체의 바람직한 의사결정은 구성원이 자유롭게 토론하고 집단적으로 숙고하는 가운데 당초 선호의 변환을 가져오면서 이뤄진다.

대화와 소통에 익숙하지 않은 정치권은 대통령자문기구인 사회통합위원회가 마련한 ‘사회통합 컨센서스 2010’에 주목하기 바란다. 지난 1년 가까이 정치 경제 사회 등 분야별로 보수와 진보 인사가 수차례 토론하면서 합의한 60가지 사항을 포함한다. 보수와 진보가 다름을 확인하는 동시에 같은 점을 찾고자 했던 절차부터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합의 내용은 정치권이 유의해서 정책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이를테면 이 합의는 북핵의 완전 폐기와 북한 인권의 실질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천안함 사태 및 연평도 포격과 관련하여 북한의 만행과 도발을 규탄하면서 평화와 안보의 틀을 포괄적으로 담아내는 대북정책을 주문한다.

정치권, 사회통합위 사례 본받아야

정치인이 교훈을 얻을 만한 공론장의 예를 시민사회에서 찾을 수 있다. 40여 년에 걸쳐 대화운동을 전개한 대화문화아카데미(크리스챤아카데미의 새 이름)다. 이 모임은 사회의 여러 분야에 걸쳐 “이쪽과 저쪽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그 사이 너머로(between and beyond) 역설적 통합의 길을 모색”했다. 이 모임은 올해 제헌절에 즈음해서 지난 5년 동안 연 500명에 이르는 각계 인사의 대화와 심의를 거쳐 마련한 새 헌법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대화와 소통의 정치가 갈등 확대의 정치를 압도해야 한국 민주주의가 심화·성숙할 수 있다. 여야 정치인이 갈등을 해소하고 관리하는 능력을 발휘하여 솔선수범하면 일반시민도 수월하게 서로 관용하고 신뢰하며 선공후사(先公後私)로써 협력하기 마련이다. 올해가 저물기 전에 국회가 날치기 통과, 몸싸움이나 입법전쟁 없이 새해 예산안을 순리대로 처리하길 바란다면 지나친 기대인가.

박찬욱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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