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장환수]바둑과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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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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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점만 놓으시죠.” 응? 뭐라고. 귀를 의심하고 있는데 원장이 한술 더 떴다. “아이고, 네 점이라뇨. 여섯 점은 놓아야 됩니다.”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는 상대. 이 사람들이 장난치나. 그래도 꾹 눌렀다. 예나 지금이나, 돈을 거저 주겠다는데 그깟 자존심이야 뭐.

1983년 겨울 서울 관악구 봉천사거리의 한 기원. 난생처음 세 점 이상 놓고 하는 접바둑. 제아무리 고수라 해도 프로가 아닌 다음에야 여섯 점인데 지키기만 할 필요가 있을까. 그러나 칼을 빼들면 슬쩍 비켜나가는 상대, 특별히 실수를 한 것도 아닌데 서서히 좁혀지는 간격. 치수를 속인 접바둑은 이내 진땀나는 진짜 승부로 바뀌었다.

수북이 쌓여가는 담배꽁초. 희한한 것은 여섯 점 접바둑에 발 디딜 틈 없이 몰려든 구경꾼들. 끝내기에 접어들면서 두 판 다 열 집은 앞섰다고 봤지만 정작 계가를 해보니 2집, 4집 패. 당시 대학 자취생이던 기자로선 거금 6000원이 나갔다. 그동안 재미가 쏠쏠했던 아르바이트였지만 이제 이틀은 굶어야 한다.

“판돈을 조금 올릴까요?” 순간 소름이 끼쳤다. “아, 제가 급한 약속이 있어서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자존심에 평생이 걸려도 아물지 않을 생채기를 낸 채 기원을 나서는 등 뒤로 원장이 그랬다. “제대로 붙으면 아홉 점도 힘들 겁니다.”

나중에 알았다. 그날 상대는 속기와 접바둑, 그리고 내기와 뒷골목 바둑의 귀재로 소문난 김동엽 프로란 걸. 봉천시장 한 귀퉁이에서 채소 좌판을 하는 어머니를 돕기 위해 자물쇠를 온몸에 달고 봉천동 비탈길을 오르내리며 열쇠 행상을 했던 아들. 뒤늦게 바둑을 알게 돼 독학으로 정상에 오른 잡초류의 대가였다. 그는 20대 후반의 나이에야 입단했지만 그 일이 있고 얼마 후 천하의 조훈현을 이겼다고 흥분하는 보도를 접하기도 했다.

수담(手談)이라고는 하지만 자욱한 담배 연기와 골방에서 벌어지는 내기가 먼저 떠오르는 바둑. 그 바둑이 대한체육회 가맹단체가 되고 광저우 아시아경기 정식 종목이 돼 열전을 치르고 있다. 전술이 있고 승부를 가리며, 개인과 단체전이 가능하고 리그를 한다는 점에서 스포츠로 인정받은 것이다.

하지만 바둑은 스포츠라 하기엔 어울리지 않는 구석이 많은 게 사실이다. 스포츠는 운동역학적으로 가장 적합한 폼을 갖춰야 한다. 손가락 끝의 미세한 변화가 신체 움직임의 전부로 보이는 사격조차 자세는 너무나 중요하다. 8자 스윙의 미국 골퍼 짐 퓨릭의 폼은 임팩트 순간만큼은 완벽하다. 반면 바둑은 이창호가 돌을 놓는 폼이 매끄럽지 못하다고, 이세돌이 왼손으로 둔다고 기량이 변하지는 않는다. 아시아경기와 요즘 프로 리그에선 대국 중 흡연이 금지돼 있긴 하지만 술 담배를 한다고, 신체장애가 있다고, 기행을 일삼는다고 특별히 달라질 것은 없다. 조훈현의 정신적 스승으로 지난해 작고한 ‘괴물’ 후지사와 슈코는 한 해 동안 일본 최고 기전인 기성 타이틀 방어전만 치른 채 밤낮으로 술병을 안고 살아도 아무 문제가 될 게 없었다.

바둑이 스포츠로 편입된 데는 대학 특기생, 군 면제, 예산 지원 등 부가적인 혜택을 누리기 위해서란 눈초리도 있다. 그런들 어떠하리. 기자는 바둑의 스포츠 편입을 쌍수를 들어 환영한다. 왜냐고? 바둑엔 여느 스포츠 못지않은 치밀함과 감동, 그리고 사람 살아가는 얘기가 있기 때문이다.

장환수 스포츠레저부장 zangpab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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