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종수]FTA정책 변화와 ‘不信사회’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1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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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정문에 손을 댈 수 없다던 정부가 태도를 바꿨다. 미국 측이 제시한 안을 다루려면 협의로는 부족하고, 협정 수정사항을 다룰 수밖에 없다고 사실상 재협상임을 시인했다. 그동안 정부는 재협상을 일관되게 부정해 왔다.

정부는 국내합의 먼저 구해야

재협상을 수용하는 듯한 언사를 하면 미국에 양보 메시지로 오인될 수 있기 때문에 정부 당국자로서는 불가피한 발언이었다고 양보해 이해한다 해도 정부의 태도에는 문제가 있다. 3년 동안 재협상 불가라는 견해를 끈질기게 공언해온 일은 적어도 국민에 대한 약속이었다.

통상 협상이나 외교정책에서 정부가 국내적 합의를 존중하지 않은 일은 과거에도 있었다. FTA처럼 국내 산업 간 이해관계를 재편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2009년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주도한 여론조사에서 조사 대상의 55.8%가 한미 FTA의 체결에 찬성한 반면 나머지는 반대 및 기타의 응답을 보였다. 한미 FTA가 서명된 2007년보다 반대기류는 줄었지만 아직도 절반에 가까운 국민이 동의를 유보하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국민적 합의를 구하기보다 국민적 무관심을 두고 보다가 재협상으로 선회한 것처럼 보인다.

국민적 합의를 간과하는 일은 협상대표단이 사용할 수 있는 중요한 카드를 하나 챙기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장기적으로 국가 경쟁력을 개선하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전문적인 내용이 포함되어 있고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하더라도 국내에서 합의를 먼저 구하고 그 바탕 위에서 협상에 임해야 합리적이다. 이 단계를 소홀히 하면 정책결정의 사회적 비용을 사후에 지불해야 하고 집행단계에서 파국을 경험하게 될 수 있다. 전문적이고 외교적인 일로 보인다 할지라도 협상이나 외교는 내치(內治)의 연장이다.

FTA는 협상의 상대가 있기 때문에 정부가 일관성을 유지하는 일이 능사가 될 수 없다고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국민 및 국회와의 약속을 바꾸어 재협상을 수용하는 모습은 너무 쉽게 정책의 일관성을 포기하는 듯해 보인다. 협상을 지나치게 비밀주의에 부쳐 왔고, 국민적 합의를 존중하고 활용하는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쇠고기 파동과 농민 시위를 거쳐 도출된 국민적 합의도 정부의 재협상 수용으로 다시 소용돌이에 휩쓸릴 가능성이 있다. 정부 정책은 경제부문과 사회계층 사이에 이익을 배분하는 구조를 내포한다. 따라서 정책이 변하면 불확실성이 커지고 갈등이 심화할 수밖에 없다. FTA 재협상은 자동차와 농업 부문의 기대이익을 감소시켜 국내 당사자의 반발과 갈등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美선 의회가 협정 손익 따져

국회의 역할도 아쉽다. FTA 협정이 서명된 뒤 한국 국회와 미국 의회의 역할은 크게 달랐다. 미 의회는 3년 동안 철저한 손익계산을 하며 비준 거부를 무기로 재협상을 압박하고 사실상 정책결정을 주도했다. 우리 국회의 속기록을 살펴보면 총론적 찬성이나 반대, 주변적 사안으로 토론을 할애한 게 대부분이었다. 정책의 최종 결정을 국민에게 위임받은 국회가 FTA 관련 이익구조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정부는 관련된 이해관계를 소상히 밝히고, 대내적 합의를 먼저 구할 필요가 있다. 이를 바탕으로 한 정책의 일관성 확보가 협상에도 도움이 되고, 정책의 효과성은 물론이고 국민의 수용도를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정부가 천안함 사건 이후 전개된 군사적 보호관계나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지지율 저하 등에 밀려 일방적 양보를 하지 않기 바란다. 협상은 주고받는 것이지, 일방적으로 번복하거나 양보할 일이 아니다.

이종수 연세대 교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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