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기획 시론/조윤제]세계질서 이끌 소프트파워 키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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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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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서울 정상회의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위기시로부터 평상시의 세계경제 최고협의체로 정착시키는 과제도 안고 있었다. 한국은 의장국으로서 금융안전망, 개발의제 등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의제를 주도함으로써 위기 후 회의체로 안착시키는 데에 기여했다. 서울 정상회의에 대한 평가는 궁극적으로 이번 합의가 세계경제에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가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의제 설정자로 국제사회 성공 데뷔

이번 정상회의는 한국의 발전사에서도 큰 의미를 지닌다. 서울올림픽이 6·25전쟁으로만 기억되던 한국을 활기찬 신흥경제국의 모습으로 세계에 알린 계기가 됐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이 선진국과 거의 대등한 산업국으로 한국을 자리매김했다면 이번 정상회의는 한국이 세계경제질서를 수동적으로 따르기만 하던 위치(rule taker)에서 이러한 질서를 만들어나가는(rule maker) 나라의 일원으로서 세계무대에 데뷔하게 한 것이다. 우리 국민은 이러한 위치에 오르기를 오랫동안 갈망했다. 이제 ‘지구촌의 유지들 모임’에 우리도 한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돌아가며 하는 것이지만 좌장의 역할도 해보았다.

우리가 갈망했던 자리를 어떻게 활용하며, 이 모임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필자는 솔직히 우리가 아직 준비가 잘 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뿐 아니다. 중국 일본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일본은 선진 7개국(G7)의 일원이었지만 미국과 유럽이 주도하는 세계질서에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모습을 보였다. 아시아 국가는 서구가 주도한 세계경제질서와 국제기구에 대해 불평의 목소리를 낸 적은 많았지만 한국이, 중국이, 일본이 원하는 세계경제질서는 무엇인가에 대해 뚜렷한 비전을 내놓지 못했다.

많은 사람이 21세기는 아시아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경제적 비중으로 보면 이 예측은 맞을 것이다. G20 출범의 근본적인 의미도 아시아의 신흥세력을 세계경제 지배구조에 끌어들이는 것이었다. 아시아의 협력 없이 세계경제 문제를 풀어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력을 넘어 새로운 세계경제질서를 구성하고 주도하는 연성국력(soft power)을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가 갖고 있는지, 혹은 빠르게 쌓아갈 수 있을지는 분명치 않다. 우리가 이를 키우지 못한다면 지구촌 유지모임에 어쭙잖은 한자리를 차지하며 연례적으로 단체사진을 찍고 과제물을 받아오는 데 그칠 것이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첫째, 소프트파워를 길러야 한다. 글로벌 비전을 제시하고 글로벌 리더십을 발휘할 지식과 실력을 키워야 한다. 지식의 기반은 합리성에 있다. 사회의 합리성과 지적 풍토를 개선할 근본적이며 광범위한 제도와 관행의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 우리의 경제력은 세계 13위라고 하지만 사회의 합리성, 지식수준은 지금 세계 몇 위쯤 될까. 대학과 언론, 관료사회, 정당이 서구사회와 대등한 학문의 수월성, 언론의 객관성과 절제성, 관료사회의 개방성, 정치적 합리성을 추구해야 한다. 우리는 서구에 뒤지지 않을 정도의 산업화와 민주화에 성공했으나 이들 부문에 있어서는 그렇지 못하다.

서구 주도 질서에 제 목소리 내야


둘째, 외교력을 키워야 한다. G20을 위해서만이 아니다. 동북아 분단국가로서의 지정학적 위치로 보나 통일문제를 접근하기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덩치가 크지 않고 강대국에 둘러싸인 나라가 새로운 국제질서 형성에 일정 역할을 하고 이익을 반영하기 위해서는 세계 최고 수준의 외교력을 가져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미국과 중국이, 혹은 중국과 일본이 경제문제나 동북아 정치안보 문제에서 갈등관계를 보일 때 어떤 입장을 취하며 어떤 역할을 할 것이냐 하는 점이다. 이 점에서 정부는 미국과 중국과의 균형외교에 소홀한 점이 없었나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셋째, 아시아가 추구하는 가치와 질서를 정리하고 국제사회에서 관철해 나가는 데 한국이 적극적 역할을 해야 한다. 라이벌 관계인 중국과 일본 어느 한 나라가 나서서 주도하기 어려운 일에 한국이 주도적으로 나서서 아시아의 공론장을 설립하고 세계 문제에 대한 토론을 선도해야 한다. 새로운 포럼을 만들고 아시아의 지식인과 정치인이 세계질서의 비전을 키우도록 주도적 역할을 한다면 G20 안에서도 한국은 분명한 입지를 갖게 될 것이다.

조윤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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