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政官界가 기업카드 빌려 쓰는 나라의 부패지수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0월 28일 03시 00분


검찰이 C&그룹 비리 수사 과정에서 야당 중진의원과 일부 386 정치인이 C&그룹에서 법인카드를 받아 사용했다는 정보를 입수해 확인하고 있다. 태광그룹도 큐릭스 인수를 위해 방송통신위원회 관계자에게 법인카드를 줬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몇 해 전부터 기업이 공무원이나 정치인들에게 법인카드를 주는 신종 상납 수법이 등장했다. 부정한 돈을 받는 쪽에서 보면 돈 보따리가 왔다 갔다 할 필요가 없는 편리한 뇌물이다.

2008년에는 검사가 건설업체 대표에게서 법인카드를 받아 3년 동안 1억 원가량 쓴 사실이 드러났지만 형사처벌은 받지 않고 해임되는 것으로 끝났다. 법인카드 빌려 쓰기는 정관계(政官界) 유력자들 사이에서 다 아는 비밀이라는 말이 들릴 정도다. 기업이 아무런 조건 없이 법인카드를 줬을 리 없는 만큼 법리를 적극적으로 해석해 뇌물죄로 처벌하는 선례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한국은 국제투명성기구(TI)가 26일 발표한 국가별 부패인식지수(CPI)에서 10점 만점에 지난해보다 0.1점 떨어진 5.4점을 받아 조사 대상 178개국 가운데 39위를 차지했다. CPI는 전문가들이 한 국가의 공무원과 정치인 사이에 부패가 어느 정도 존재하는지 인식하는 정도를 0∼10점으로 나타낸 것이다. 5점대 지수는 ‘절대 부패에서 갓 벗어난 상태’를 의미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의 평균 CPI가 6.97로 나왔다. 10에 가까울수록 투명도가 높다. 5.4는 세계 15위 경제규모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의장국임이 부끄러운 지수다.

한국의 CPI가 작년보다 하락한 데 대해 국민권익위원회는 부패 총량의 증가 때문이 아니라 정부의 강력한 청렴 정책 추진 과정에서 드러난 과거의 부패 친화적 관행과 불합리한 요소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런 측면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부패사건이 터지는 걸 보면 부패가 줄고 있다고 하기도 어렵다. 정관계 인사들이 별 죄의식 없이 기업의 법인카드를 가져다 쓰는 나라에서 CPI가 획기적으로 개선될 수는 없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나 국가경쟁력 순위만으로 선진국을 운위할 수 없다. 기업 경영, 정부의 행정, 국회의 입법, 그리고 사법부의 재판이 선진국 수준으로 투명하게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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