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큰 그림 없이 정부에 對北대화 조르는 여당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0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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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 한나라당 사무총장이 22일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대북(對北)정책에 관여했던 관료와 학자들이 주도하는 한반도평화포럼 창립 1주년 행사에서 “천안함 사건에 대한 분노를 표시하는 기간이 거의 다 돼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이 천안함 폭침을 당한 뒤 겨우 7개월이 지났다. 초계함이 침몰하고 46명의 장병이 산화했지만 북한은 도발 인정과 사과, 책임자 처벌 요구에 응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한국이 조작했다고 우기고 있다. 집권 여당 사무총장의 발언은 북한에 발뺌과 역(逆)선전의 빌미를 줄 소지가 다분하다. 북한이 조금만 버티면 남북관계가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변할 것이라는 오판을 할 수가 있다.

원 총장은 “남북관계를 개선하라는 국민적 요구, 국제정세의 흐름과 (현 정부가) 언제까지 따로 갈 수는 없다”는 말도 했다. 무분별한 대북 지원으로 사실상 북의 핵개발을 도왔던 세력이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며 대북 유화론을 펴는 배경에는 친북좌파의 과오를 덮으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원 총장은 남북관계 경색의 진원지인 북의 도발을 애써 외면하는 세력을 편드는 것인가.

북한은 세계에 유례가 없는 3대 세습을 추진하며 정권을 유지해보려고 안간힘을 다하고 있지만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처지다. 금강산 여행객 박왕자 씨 사살 사건에 이어 천안함 폭침까지 저지른 북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우리 정부만 대화에 조급증을 내면 북의 나쁜 버릇을 고칠 기회는 멀어진다.

천안함 사건 이후 일부 계층에서 북한과의 대결을 피하고 다독거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런 분위기가 확산되면 북한은 한국으로부터 원하는 것을 얻고 싶을 때마다 도발을 자행할 것이다. 한나라당은 비뚤어진 일부 세태에 영합하기보다 정부에 원칙 있는 대북정책을 지속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22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여당 중진의원들은 통일부의 역할 부재를 질책하며 “한반도의 현상을 타파할 수 있는 전략을 내놓으라”고 현인택 장관에게 촉구했다. 도발을 저지른 북한에 대한 단호한 국회 결의 하나 성사시키지 못하는 집권당이 정부 조르기에 가세한 모양새다. 무엇인가를 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하지 않는 것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대북 대응에서 조급증은 큰 틀을 그르칠 우려가 있음을 경험을 통해 배우지 못했단 말인가. 한나라당이 집권당 역할을 하려면 원대하고 치밀한 대북전략을 만드는 노력부터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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