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신연수]슈퍼가젤 기업을 만든 사람들

동아일보 입력 2010-09-17 03:00수정 2010-09-1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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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에게서 많은 재산을 물려받은 사람들이 아니다. 두뇌가 반짝반짝하는 20대에 창업한 것도 아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나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처럼 명문대학에 들어갔지만 더는 배울 게 없다며 중퇴한 ‘괴짜 천재’들은 더더욱 아니다.

국내에서 ‘슈퍼가젤기업(Super Gazelles Company)’을 일군 경영자들은 겉보기엔 너무나 평범했다. 벤처기업협회가 선정한 슈퍼가젤기업 14곳의 최고경영자를 동아일보가 취재해 보니 이 중 12명이 이공계 출신이고, 10명은 다른 기업에서 근무하다 40대에 창업한 사람들이었다.

가젤기업이란 작지만 빠르게 성장하는 회사. 보통 3년 연속 매출이 평균 20% 이상 성장한 회사를 일컫는다. 빨리 달리면서 동시에 높은 점프력을 가진 영양류 가젤과 닮았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이 중 매출이 1000억 원 이상인 회사가 슈퍼가젤기업이다.

슈퍼가젤기업을 업종별로 보면 요즘 잘나가는 최신 분야에 몰려 있지 않다. 태양광이나 소프트웨어뿐 아니라 화장품, 공작기계, 광학필름 등 레드오션(red ocean·포화된 시장)이나 전통산업 계열이 더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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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품 연구개발제조 전문업체 코스맥스의 이경수 대표는 상사와의 갈등 끝에 회사를 나와 창업했다. 그는 “월급쟁이 시절에 마음 아프고 괴로운 일도 많았는데 그게 다 경영수업이었다”며 “미래를 준비한다고 다른 일에 골몰하기보다 현재 맡은 일에 충실하면서 고객, 상사 등과 잘 사귀다 보면 그게 다 사업할 때 피가 되고 살이 된다”고 했다.

“이런 크기의 산업용 보일러를 만들 수 있는 회사는 두산중공업과 우리밖에 없다”고 자부하는 발전설비 전문업체 신텍은 10년 전 중공업계 구조조정으로 실직한 회사 동료 5명이 차린 회사다. 2001년 매출액 13억 원에서 지난해 1332억 원으로 뛰었고, 2015년엔 1조 원을 달성하겠다며 기염을 토하고 있다.

이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겉보기에 화려하거나 한때 유행하는 것을 좇기보다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 좋아하는 것에다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결합해 사업화했다는 점이다. 골프존의 김영찬 대표는 전자회사에서 근무한 경험과 자신이 좋아하는 골프, 인터넷을 결합해 골프 시뮬레이터 사업을 시작했다. 이경수 대표는 제약회사 근무 경험을 바탕으로 선진국에선 화장품의 제조와 유통이 분리된 데 착안해 제조만 하는 회사를 차렸다. 이들은 사업 초기 실적이 없어 아무도 제품을 사주지 않고, 은행에서 돈도 빌려주지 않으며, 인재 부족에 허덕이면서도 ‘잘할 수 있다’는 투지로 온갖 어려움을 극복해왔다.

최근 가젤기업은 일자리 창출의 주역으로 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다. 중소기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미국은 전체 기업 수의 4%인 고성장 기업이 일자리 60%를, 영국은 전체 6%에 불과한 고성장 기업이 일자리 54%를 창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덴마크 핀란드 호주 영국 네덜란드 등의 정부는 가젤기업 육성책을 앞 다퉈 내놓고 있다. 창업 단계의 회사를 지원하면 절반 이상이 망해 일자리도 없어지지만 어느 정도 성장 가능성이 입증된 기업을 지원하면 안정된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우리도 슈퍼가젤기업 1000개, 1만 개를 만든다면 취업난과 대·중소기업 갈등을 줄이고 미래 성장동력까지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신연수 산업부장 ys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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