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21세기 한민족이 부끄러운 3代세습극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8월 30일 03시 00분


100년 전 나라를 빼앗긴 국치일(國恥日)인 어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중국에서 경제적 정치적 지원을 구걸했다. 김정일은 이번 방중 기간에 3남 김정은을 데리고 중국 지도부를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100년 전 망국의 치욕도 망각한 채 오직 후계자 책봉을 승인받기 위한 굴욕적 사대(事大)외교 행각을 벌인 것이다. 21세기 지구촌에서 유일한 3대 세습극을 보고 있자니 같은 민족으로서 낯이 뜨겁다.

북한은 올여름 큰 수해(水害)를 입었지만 김정일이 수해 현장을 방문해 고통을 겪는 주민을 위로했다는 소식은 없다. 물에 떠내려가고 죽어간 주민을 외면한 채 26량의 특별열차에 수행원을 가득 태우고 요란한 여행을 했다. 그가 방문한 중국에서는 자연재해가 나면 후진타오 국가주석과 원자바오 총리가 현장을 찾아 국민을 위로한다. 제대로 된 지도자라면 주민이 수해로 고통을 겪고 있는 시기에 외국 방문은 자제했을 것이다.

외국을 방문한 일국의 지도자답지 않게 동선(動線)을 감추고 숨어 다니는 모습도 비루하기 짝이 없다. 제 발이 저린지 이번에는 3개월 전 방중 때보다 보안이 더 철저하다. 북한에서는 다음 달 초 44년 만에 열리는 노동당 대표자회를 앞두고 김정일 우상화를 위한 경축행사가 한창이다. 노동당 대표자회 전에 후계자 승인을 받고 선물 보따리를 들고 오려는 생각이 급했을 것이다. 김일성 왕조의 3대 세습은 북한의 불행이 계속된다는 예고나 마찬가지다.

광복과 함께 다시 남북이 분단돼 6·25전쟁을 겪었지만 남북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격차가 벌어졌다. 한국은 세계 15위 경제발전을 이룩하고 선진국으로 나아가면서 원조를 받은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성장했다. 북한에서는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때 200만 명 이상이 굶어죽었다. 굶주림과 압제를 견디다 못한 탈북 행렬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김정일을 비호하는 중국 지도부도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중국이 나라를 파멸로 몰아가고 있는 독재정권의 3대 세습을 떠받치는 것은 국제사회의 지도국으로서 결코 명예스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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