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박현진]600년 만에 부활한 ‘鄭和원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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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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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금융회사의 채권 딜링룸에는 최근 이례적인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국제금융시장에서 주목을 받지 못했던 한국 국채(國債)를 사겠다는 외국 투자자들의 주문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은행이 7월 기준금리를 올렸지만 채권 수요가 몰려 값이 오르면서 금리는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 한국만은 아니다. 일본의 2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잃어버린 10년’을 다시 떠올릴 정도로 처참했지만 경제성적을 반영한다는 통화가치는 정반대로 움직였다. 엔화 가치는 지난주 15년 만에 최고치로 올라서 이 추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 달러와 미 국채를 사재기하면서 미국 경제의 버팀목이 되었던 중국이 미 국채와 달러를 팔아치우면서 미국 경제를 보이지 않게 압박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국가들의 경제 움직임에는 한결같이 주요 2개국(G2)으로 부상한 중국이 근저에 자리 잡고 있다.

이런 현상을 일시적인 것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국내외 경제 및 역사학자들은 600여 년 전 환관 출신인 중국의 정화(鄭和)가 대함대를 이끌고 아시아를 넘어 아프리카 동부까지 세력을 넓혔던 세계 원정이 부활한 것 아니냐는 분석을 조심스레 내놓고 있다.

15세기 초(1405∼1433년) 정화의 원정과 21세기 초 중국의 대약진은 그러나 최소 두 가지 점에서 다른 듯하다. ‘문명과 바다’의 저자인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사학)는 당시 정화의 대원정군이 항로를 중국으로 다시 틀지 않았더라면 200여 년에 걸친 서양 중심의 세계는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당시 정화 원정대는 “중국은 해외에 나갈 필요 없이 내수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명(明) 왕조의 쇄국정책에 따라 눈물을 머금고 귀환해야 했다. 21세기 중국은 최근의 행보를 되돌릴 것 같지는 않다는 게 첫 번째 차이다.

당시 정화 원정대가 중국의 위세를 떨치기 위한 것이었다면 최근 중국의 움직임은 경제 패권을 아시아로 되돌리기 위한 치밀한 전략을 갖고 있다는 게 두 번째 차이다. 일례로 중국 국무원은 지난해 “현재 세계 결제통화에서 0.2%에 불과한 위안화를 1년 내로 30%로 늘리겠다”고 발표해 미국과 유럽연합(EU)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부지불식간에 미얀마 태국 등 아시아 국가의 국제결제통화는 위안화로 바뀌고 있다.

중국은 주체할 수 없는 달러를 바탕으로 ‘세계의 공장과 소비시장’을 넘어 글로벌 금융 및 자산시장에서도 G2로 등극하려 하고 있다. 한국은 이 같은 변곡점을 제대로 인식하고 대응하고 있을까. 불행히도 한국의 금융회사와 기업은 시대의 흐름을 거슬러 뒷걸음치고 있는 것 같다. 금융회사들은 중국에 기껏해야 연락사무소 1, 2곳을 둘 뿐이다. 선진 기업들이 중국에 대한 해외직접투자(FDI)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리는 상황에서 한국 기업의 대(對)중국 FDI 비중은 2004년(10.3%) 이후 지속적으로 줄어 올 상반기 현재 2.8%로 급감했다.

정화가 대해양을 누비고 당시 세계통화였던 은(銀)이 중국으로 몰릴 때 조선의 해외 수출품은 인삼 등 손에 꼽을 정도였다. 당시 세계경제의 흐름에 좀 더 관심을 갖고 재빨리 보폭을 넓혔더라면 2010년 한국은 또 다른 모습일지도 모른다.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한다. 또 되풀이되지 않을 수도 있다. 아쉬운 역사를 되풀이할거냐 말거냐는 선택의 문제다. 중국은 이미 그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로 결정을 내린 것 같다.

박현진 경제부 차장 witn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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