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우경임]암 이겨내고 자살하는 안타까운 사연은 없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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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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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암을 치료 중이면 암 환자, 암을 완치했으면 암 완치자라고 부른다. 그런데 최근에는 둘을 합쳐 암 생존자(Cancer Survivor)라고 부른다. 이유는 뭘까.

취재 중 만난 의사와 환자들은 “암 치료가 끝나도 암은 끝난 것이 아니다”라며 “암을 완치해도 암을 겪기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기업 간부 A 씨는 대장암을 극복했지만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승진을 앞두고 사내에 “A 씨는 대장암 수술을 받았는데 일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는 얘기가 떠돌았다. 결국 이사 승진 문턱에서 좌절했다. A 씨는 요즘 정신과 전문의의 상담을 받고 있다. 모든 걸 잃었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실제 암 생존자의 자살률은 일반인보다 높다. 암 진단 후 절망에 빠져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강한 의지로 암을 이기고 나서도 자살을 하는 비율이 일반인보다 높다. 신동욱 서울대 가정의학과 교수는 “암을 진단받고 나면 사회적 역할로 복귀가 쉽지 않아 좌절감·우울감에 빠져든다”며 “일을 할 수 없으니 경제적 고통도 커진다”고 말했다. 암을 겪은 사람을 아픈 사람, 사회적 무능력자로 보지 말고 제몫을 하도록 도와야 한다는 뜻에서 암 생존자라는 개념이 등장한 것이다. 서바이버란 말 자체도 극한상황을 이겨낸 의지의 소유자란 의미를 담고 있다.

암 생존자는 늘 재발의 공포에 시달린다. 그래서 다른 질환에 걸리리라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하지만 병원은 암 검진만 해줄 뿐 다른 질환에 대해선 관여하지 않는다. 대장암을 완치한 환자 B 씨는 6개월마다 정기 검진을 받고 있다. 의사는 혈액검사 결과를 알려주면서 “콜레스테롤 수치도 높다”고 말했다. 다른 설명은 없다. B 씨는 불안한 마음에 가정의학과를 찾아 진료를 받았다. 하지만 B 씨와 달리 대부분 암 생존자는 암만 재발하지 않으면 건강하다고 생각한다.

2015년이면 암 생존자가 100만 명이 넘어설 것으로 추산된다. 암 환자를 암 생존자로 부르는 것은 듣기 좋은 소리여서가 아니다. 개념을 담는 그릇(언어)을 바꾸면 인식도 바뀐다. 외국에서는 가족, 친구, 간병인까지 암 생존자로 분류하기도 한다. 고통을 함께 나누기 때문이다. 우리는 ‘암 예방의 날’을 기념하지만 선진국은 ‘암 생존자의 날’을 정해 편견을 깨려고 노력한다.

마침 보건복지부가 암 생존자 관리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고 하니 지켜봐야겠다. 의료기술이 뛰어나다고 의료선진국인 건 아니다.

우경임 교육복지부 wooha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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