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김창혁]MB정부의 체감법치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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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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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천은 대통령이 다 하는거야”
YS시절보다 퇴보한 법치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때만 해도 그는 SD라는 영문 이니셜로 불리지 않았다. 그냥 (국회)부의장이었다. 그 즈음, 개인적인 일로 그를 만나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화제는 자연히 경선과 대선으로 옮아갔다.

어느 순간, 그의 입에서 내 귀를 의심케 할 만한 말이 튀어나왔다. “당정분리는 무슨…, 공천은 대통령이 다 하는 거야!” 얘기가 MB 당선 후의 2008년 총선과 한나라당 개편 문제로까지 이어졌던 모양이다. 꽤 많은 대화가 오갔지만 그 말은 아직도 기억이 또렷하다.

당정분리는 한나라당 당헌에 명시된 대원칙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당원은 그 임기 동안 명예직 이외의 당직을 겸임할 수 없다’(제7조)는 것이다. 대통령이 당 총재직까지 겸임해 여당 의원들을 쥐락펴락하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막기 위해 박근혜 대표 때 도입한, 정당민주주의의 진일보였다. 그의 말은 그 진보를 되돌리겠다는 것이나 진배없었다. 다시 10년 전의 민자당 시절로….

권부(權府)의 핵심을 영문 이니셜로 은밀(?)하게 부르는 여의도의 작명 관행에 따라 이상득 부의장은 그때부터 SD로 거듭났다. 나는 그렇게 본다.

몇 년 전 얘기를 장황하게 끄집어내는 이유는 그의 말에서 뭐랄까 ‘법치의식의 퇴행’을 예감했기 때문이다. 김대중 노무현 시절을 ‘잃어버린 10년’으로 규정했으니 크게 이상할 것도 없는 걸까? 여하튼 그들이 승계한 ‘현재(現在)’는 김영삼(YS) 민자당 시절의 권력문화, 정치문화, 법치의식이었다. 정치가 법보다 상위에 있다는.

그런데 내 예감은 어긋났다. MB 정부의 법치의식 퇴행은 YS 시절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는 게 분명했다. 지방에서는 정보기관원들의 ‘법원 접촉’이 재개됐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물론 박정희 전두환 시절처럼 서슬 퍼렇게, 막무가내로 이뤄지는 건 아니었다. 주로 우파정권의 기득권에 기대려는 보수성향 판사들이 창구가 됐지만, 권력이 별다른 죄의식 없이 법원에 스며드는 일은 YS 시절에도 그리 흔치 않던 행태였다. 일부에선 국정원 간부를 상석(上席)에 앉히는 기관장 모임도 되살아났다고 했다.

권부에서 자란 바이러스는 확산 속도가 빠르다. MB 정부는 과거 어느 정부보다 법치를 시대정신으로 외쳤지만, 내가 느끼는 체감법치지수는 좀 다르다. 신문사에 근무하는 필자의 체감지수가 이 정도면, MB를 지지하지 않는 ‘일반인’들의 지수는 좀 더 낮을 것이다.

6·2지방선거의 뚜껑이 열리자 여러 곳에서 민심이 불과 며칠 사이에 어떻게 20%가 넘게 요동칠 수 있느냐, 여론조사가 잘못된 것 아니냐는 아우성이 터져 나왔다. 글쎄, 과연 그럴까? 나는 딴 곳에 혐의를 두고 있다. 선진국 수준인 우리 여론조사 기법으로도 감지할 수 없는 ‘숨은 민심’이 있었다면, 그건 최소 20%는 정치적 의사 표현에 부자유를 느끼고 있었다는 뜻 아닐까? 그렇다면 그 부자유의 뿌리는?

선거 이후 이명박 대통령은 누구보다 소통과 통합에 목말라 하는 것 같다. 이번 청와대 개편을 보면 그 갈증의 정도를 알 수 있다.

하지만 ‘해방 전후’ 같은 현재의 국민 분열이 청와대 개편 정도로 치유될 수 있다고 믿진 않을 것이다. 국민통합도 남북통일처럼 접근할 필요가 있다. 통일을 지향하되 지금 당장은 평화공존과 평화관리에 힘을 쏟을 수밖에 없듯이, 통합을 위해 진정성을 쏟아 붓되 지금은 그에 앞서 성숙한 가치공존의 지혜를 짜내야 한다. 그 지혜는? 아무리 생각해도 법치뿐이다. 좌든, 우든 법치만 존중한다면 건강한 공존이 가능하지 않겠는가.

김창혁 교육복지부장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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