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KAIST 개혁’ 徐총장 쫓아내기의 추한 막후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6월 26일 03시 00분


서남표(徐南杓) KAIST 총장은 2006년 7월 취임 이후 교수 정년보장(테뉴어) 심사 강화, 학부 전 과목 100% 영어 강의, 성적부진 학생 장학금 미지급 같은 조치로 ‘철밥통’ 대학사회에 개혁을 몰고 왔다. 2008학년도 입시부터는 1차 서류전형을 통과한 학생들을 교수들이 일일이 찾아다니는 인성면접으로 신입생을 선발했다. 잠재력과 성장 가능성을 보고 뽑는 입학사정관제의 선도적 역할을 한 것이다. 서 총장의 개혁 드라이브는 한국 대학에 경쟁력 키우기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서 총장 취임 이후 KAIST는 2005년 세계 232위였던 영국 더타임스의 세계대학평가에서 2009년 69위로 급상승했다. 작년엔 김병호 서전농원 대표가 KAIST의 개혁에 감동했다며 300억 원 상당의 임야를 기부했다. 전국의 독지가 3224명이 과학인재 육성을 위해 4년간 KAIST에 기부한 돈이 1350억 원이다.

서 총장이 첫 4년 임기를 내달에 끝내면 연임되지 못할 처지에 몰리고 있다. 최근 열린 총장선임 소위원회와 총장선임 이사회는 후보추천 합의를 하지 못하고 무산됐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서 총장을 밀어내기 위해 이사회를 계속 무산시켜 총장 대행체제로 끌고 가려 한다는 관측이 있다. 사실이 그렇다면 교육당국과 대학의 전근대적 관계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교과부는 공식적으로는 KAIST가 정부 지원을 받아 추진하는 ‘모바일 하버’와 ‘온라인 전기자동차’가 1980년대 미국에서 실패한 프로젝트임에도 500억 원의 예산을 사용했다는 점을 문제 삼는다. 그러나 서 총장을 쫓아내려는 움직임의 막후에는 해외파와 국내파, 경기고 인맥, 서울대 공대 대(對) KAIST 등 학맥 갈등이 자리잡고 있다고 한다. 지난날 외국인 총장을 몰아낸 일부 인사들이 이번에는 특정 학교 학맥의 총리, 교과부 장관까지 동원해 서 총장을 축출하려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지식정보 사회에서 한 나라의 경쟁력은 대학이 이끈다. 작년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발표한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한국의 대학교육 관련 지표는 57개국 중 50위권이었다. 4년 만에 대학경쟁력을 163계단이나 올려놓은 서 총장을 연임시키지 않는다면 대체 어떤 총장을, 무엇을 보고 뽑겠다는 건지 납득하기 어렵다.

만일 교과부가 정부에 고분고분하지 않은 총장을 몰아내려는 작업을 하는 것이라면 차라리 그런 교과부를 구조조정하는 것이 교육과학기술 발전에 보탬이 될 수 있다. 평소 서 총장은 “한국 대학이 발전하려면 교과부의 시스템을 먼저 바꿔야 한다”는 입바른 소리를 서슴지 않았다. KAIST를 세계 최고의 이공계 대학으로 만들겠다는 서 총장 같은 교육개혁가가 많이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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