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공기업 監事‘정권의 낙하산’으로 채우지 말라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6월 23일 03시 00분


공기업과 준정부기관 등 101개 공공기관 가운데 35곳의 감사(監事) 임기가 연내에 끝난다. 정부와 여당은 2008년 임명돼 올해 임기가 만료되는 감사들의 연임을 원칙적으로 허용하지 않을 방침이다. 벌써부터 일부 여권(與圈) 정치인과 퇴직 관료의 인사 로비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공기업 감사 자리를 집권세력의 전리품으로 여기는 잘못된 관행은 민주화 이후 정권이 몇 차례 바뀌어도 달라지지 않았다. 권위주의적 군사정부 때는 군(軍) 출신 퇴직자들이, 노무현 정부 때는 ‘정권의 홍위병’들이 대거 감사에 임명됐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문성과 실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새로운 실세(實勢)들에게 줄을 대 낙하산을 타고 공기업으로 내려가는 구태(舊態)가 반복됐다. 정치 논리로만 보면 어느 정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지만 왜곡된 인사 시스템을 정당화하는 구실이 될 수는 없다.

정권과의 연줄로 공기업 감사가 된 사람들은 본연의 업무인 회계와 직무 감찰은 뒷전이고 자리만 지키면서 공기업 효율을 떨어뜨리기 쉽다. 권력의 줄을 타고 내려간 약점 때문에 노조에 발목이 잡혀 공기업 직원의 과잉 복지혜택을 줄이는 개혁에는 손도 대지 못할 개연성이 높다.

김대중 정부 시절이던 2001년 3월 전윤철 기획예산처 장관은 “대차대조표도 볼 줄 모르는 사람을 공기업 감사나 사장으로 보내는 것은 특히 문제”라며 전문성 없는 정치인의 공기업행(行)에 대한 우려를 청와대에 전달했으나 통하지 않았다. 공기업 주무부처 장관조차 힘이 부칠 정도였던 ‘정치권 낙하산’의 폐해는 이 정부라고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정치권 인사라고 무조건 공기업 사장이나 감사로서의 자격이 부족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객관적으로 볼 때 어느 정도의 업무 유관성은 갖춘 사람이라야 후유증이 적을 것이다.

감사의 연임을 불허한다는 원칙도 자칫 악용될 소지가 있다. 2년 넘게 그 자리에 있으면 내부인의 시각에서 기관을 보게 돼 본연의 업무를 수행하는 데 지장이 있을 것이라는 정부의 설명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정권 창출에 기여하고서도 자리를 받지 못한 인사들의 줄이 아직도 길게 남아 있어 임기를 1년 더 연장해주지 않는다는 관측도 나온다. 일을 잘하고도 일률적으로 임기 연장이 안 된다면 성실히 업무를 수행할 의욕이 줄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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