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임우선]필리핀 시민의 발 만드는 ‘기술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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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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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핀 여대생 자닌 갈도즈 양(17)은 요즘 매일 아침 열차를 타고 마닐라에 있는 대학에 간다. 마닐라 도심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이 열차는 그의 집과 학교를 30분 만에 잇는다. 요금은 단돈 10페소(약 270원). 반짝반짝 빛이 나는 새 열차는 냉방도 잘돼 그렇게 쾌적할 수가 없다.

하지만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갈도즈 양의 통학길은 지금과 전혀 다른 ‘고생길’이었다. 통학하기 위해 트럭형 버스인 ‘지프니’를 타야 했기 때문이다. 지프니는 마닐라 서민들이 많이 이용하는 대중교통 수단이지만 냉방이 되지 않아 ‘찜통’을 각오해야 한다. 유리창도 없어 뻥 뚫린 창으로는 매캐한 매연이 그대로 들어온다. 갈도즈 양은 “정체가 극심한 출퇴근 시간에는 학교까지 1시간 이상 걸릴 때도 있었다”며 “비용도 100페소나 됐다”고 했다.

최근 갈도즈 양의 등굣길이 이렇게 확 바뀐 것은 지난해 말 한국 정부와 기업이 손잡고 추진해 온 ‘마닐라 간선철도 현대화’ 사업이 완성 단계에 접어든 덕분이다. 한국 정부와 수출입은행은 지난 3년간 6500만 달러의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을 들여 마닐라 도심과 외곽을 잇는 34km 구간 철도를 개·보수했다. 이 공사의 진행 및 시공은 대우인터내셔널과 한진중공업, 유신코퍼레이션 등 국내 기업이 맡았다. 열차는 현대로템의 최신 디젤전동차로 교체됐다.

버려진 상태나 다름없던 간선열차가 대변신을 하면서 요즘 필리핀 서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열차를 이용하고 있다. 실제 기자는 출근시간대를 훨씬 넘긴 오전 11시경에 이 열차를 탔는데 첫 정거장을 출발한 지 두 정거장도 지나지 않아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만원이었다.

박만환 수출입은행 마닐라지사장은 “(공사 여건이 열악해) 중국 일본 업체도 시도하려다 포기한 사업”이라며 “한국 기업의 공사 완성도와 스피드에 놀랐다는 시민이 많다”고 전했다. 앞으로 있을 필리핀 철도 현대화사업도 우리 기업이 수주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귀띔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EDCF를 활용해 필리핀에 ‘라귄딩간 공항’을 짓는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활주로와 터미널뿐 아니라 운항관제시스템까지 모두 ‘메이드 인 코리아’다. 이 사업은 국내에선 일감이 고갈돼 사장될 위기에 처한 뛰어난 공항 기술인력들이 마음껏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장(場)이 되고 있다. 신흥국의 고급 사회기반시설을 지원하는 것은 원조 대상국도 돕고 우리 기업의 신흥시장 사업 기회도 넓혀준다는 점에서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닐라에서

임우선 산업부 ims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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