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李대통령이 정국 수습의 중심에 설 때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6월 11일 03시 00분


가톨릭계 원로 정의채 몬시뇰은 “6·25 때 반공포로를 석방했던 이승만 대통령과 같은 용기를 이명박 대통령이 보여주지 못하면 국정이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 몬시뇰은 6·2지방선거 결과에 대해 “이명박 정권이 안에서 권력싸움만 하고 있다. 기회주의자와 소인배들만 모여서 그때그때 모면만 하려고 든다”면서 “이 대통령이 완전히 바뀌지 않고는 회복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질타했다.

과거 정부에서 대통령수석비서관과 장관을 지낸 한 인사도 “선거에서 왜 졌는지 제대로 인식을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여당의 패배가 명백한 중간성적표가 나온 지 10일이 됐는데도 이 대통령은 화난 민심에 대해 구체적인 답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청와대는 문제의 본질을 깨닫지 못하고 ‘어리둥절’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나라당에서 연일 터져 나오는 인적쇄신, 국정쇄신 요구에 대해서도 그저 상황을 지켜보자는 식이다. 참모들은 한나라당 전당대회나 7·28재·보선 결과도 봐야 하니까 아직 대통령이 나설 단계가 아니라고 보고했을지 모른다. 대형 사고가 터졌는데 작은 사고가 한 건 더 남았으니 그때까지 기다리자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이명박 정부는 이제 두 달 남짓 후면 임기 반환점을 돈다. 이 대통령은 선거 패배 후 첫 일성으로 “경제 살리기에 전념하자”는 얘기를 했다. “선거 결과를 다함께 성찰의 기회로 삼자”는 말도 있었지만 절박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경제 안보 같은 국정이 추진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이 대통령이 국민의 에너지를 한데 모으는 구심력이 돼야 한다.

한나라당 초선 의원들은 어제 재·보선 이전 청와대 참모진 개편, 국정운영시스템 개선, 수평적 당청 관계 정립, 세종시와 4대강 사업에 대한 민심 적극 수용 등을 포함한 6개 항의 쇄신안을 요구하는 연판장을 돌렸다. 세종시와 4대강에서도 결국 토론과 절충의 정치가 필요하다.

세종시나 4대강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이명박 정부의 소통 부족과 폭넓게 유능한 인재를 구하지 못하는 측근·연고 중심의 폐쇄적 인사를 타파해야 한다. 한 전직 국회의장은 “테이블 인사도 문제다. 자기 눈앞에 보이는 사람, 믿을 수 있는 사람, 아는 사람을 중심으로 인사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널리 인재를 구하기 위해 부단히 애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 원로는 “주요 국정 추진에서 대통령만 보이고 장관이 보이지 않는다”며 “전문성을 가진 장관을 발탁하고 책임과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청와대와 정부, 한나라당이 모두 인적쇄신의 대상이지만, 그중에 ‘1번’은 청와대가 돼야 한다. 반대세력에 발목 잡혀 국정이 표류하고, 아무것도 되는 일 없는 정부가 된다면 이 대통령 개인을 떠나 나라의 불행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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