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對北대응 너무 나약하지 않나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6월 2일 03시 00분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천안함 사태와 관련해 “북한의 책임을 묻기 위해 단호하게 조처해 나가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대통령의 대(對)국민 담화문 발표에 이어 통일 국방 외교장관이 구체적인 대북(對北) 제재조치를 발표했다. 국민에게 단호한 대처를 약속하고 북한에는 준엄한 경고를 보낸 것이다. 국제사회도 한국 정부의 결연한 태도를 지지했다.

그로부터 불과 열흘이 지나지 않아 정부의 ‘단호한 대처’에서 기운이 빠지고 있다. 5월 25일부터 재개하겠다던 대북 전단(삐라) 살포가 보류됐고 확성기 방송도 불투명해졌다. 국방부는 처음에는 “기상 여건을 고려해 전단 살포를 연기했다”고 하더니 이제는 “정치적인 상황도 고려해 당분간 전단 살포를 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을 바꾸었다. 정부가 국민에게 한 약속이 흔들리고 대북 경고도 힘을 잃게 됐다. 그제 통일부 차관의 외신브리핑에서 한 외국 기자는 “한국정부 정책의 후퇴가 아니냐”며 빈정거리는 투로 질문을 던졌다. 단호한 대응은 대통령과 장관들의 말뿐이었는가.

정부가 첫 단계에서 주춤거리면 다른 제재조치들도 동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북한은 남한이 심리전을 재개하면 개성공단 폐쇄와 확성기 조준격파사격을 하겠다고 위협했다. 협박에 뒷걸음질치는 남한을 보고 북한이 무슨 두려움을 느끼겠는가. 지금쯤 북한 집권세력은 남한의 심리전을 저지했다며 쾌재를 부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정부의 나약한 대응은 대(對)중국 외교에서도 드러났다. 한중 정상회담에 이어 한중일 정상회의에서 천안함 사태가 논의됐지만 원자바오 중국 총리에게서 ‘북한’이라는 한마디 말도 끌어내지 못했다. 원 총리의 방한으로 중국을 설득할 절호의 기회가 주어졌는데도 정부는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중국의 선처만 기대하면서 총력외교를 하지 못해 결과적으로 중국이 정한 가이드라인에 우리가 동조한 셈이 되고 말았다.

북한에 강력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중국에도 비굴하게 처신하면 천안함 외교는 성공할 수 없다. 중국 눈치는 그만 보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장에게 서한을 보내 당당하게 안보리 소집을 요구하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우리에게는 5개 상임이사국을 비롯한 15개 이사국에 북한의 도발을 명명백백히 입증할 민군 국제합동조사단의 조사 결과가 있다. 중국에 사실을 인정할 것인지 말 것인지 선택하라고 요구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대통령과 안보관계 장관들은 결연한 자세로 천안함 사태에 임해주기 바란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