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윤양섭]골드만삭스와 美중간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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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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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골드만삭스의 한국홍보를 대행하는 업체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관련 보도에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골드만삭스를 ‘(형사) 기소했다’가 아니라 ‘민사소송을 냈다’라는 표현이 맞다는 완곡한 항의였다. 미국 변호사에게 문의한 결과 한국과 시스템이 다르지만 그 말이 더 가깝고, ‘제소’라는 표현이 좋겠다는 의견이었다. 이 와중에도 골드만삭스가 한국 언론보도까지 신경 쓰고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골드만삭스는 일류 금융회사다. 1869년 뉴욕에서 유대계 자본의 어음중개회사로 출발해 승승장구했다. 1980년대에는 M&A로 앞서갔다. 우수한 인력으로 채워진 ‘신의 직장’이었고, 금융사관학교였다. 월가의 다른 금융회사와는 달리 사내 분위기가 끈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회사를 떠난 사람을 챙기고, 그 사람은 다시 회사를 챙겨주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곳 출신의 로버트 루빈과 헨리 폴슨이 각각 빌 클린턴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 재무장관을 역임했다. 로버트 졸릭 세계은행 총재도 여기 출신이다. 골드만삭스는 금융위기 속에서도 심각한 타격을 입지 않았다. 올해 1분기에만 순이익 약 3조8000억 원을 냈다. 삼성전자보다 1분기 매출규모는 훨씬 적지만 순이익은 더 많다.

골드만삭스에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칼끝을 겨눴다. ‘복잡한 수식으로 만든 파생금융상품으로 고객 돈 10억 달러를 날리게 하고, 헤지펀드에는 10억 달러를 벌어주고, 그 와중에 수수료 1500만 달러를 챙겼다’며 ‘사기(詐欺)’라는 낙인을 찍었다. 이번 기회에 골드만삭스로 대표되는 월가를 몰아붙여 금융개혁의 동력을 확보하겠다는 속셈이다. 구제금융을 받은 월가의 흥청망청 보너스 잔치를 물고 들어가는 것도 같은 이유다.

오바마 정부의 금융개혁안은 한마디로 월가의 고삐를 죄자는 것이다. 고수익을 쫓아 위험자산도 마다않는 투자은행을 일반 상업은행에서 아예 분리하자는 볼커룰이나 파생상품을 규제하자는 법안이 다 그렇다. 현재 금융개혁법안은 의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 오바마 정부는 법안 통과를 위해 분위기를 반전시킬 카드가 필요했다. 골드만삭스가 그중 하나다. 대중의 분노를 살 만한 사안을 이슈화해 11월 중간선거에서 승기를 잡겠다는 정치적 고려도 깔려 있다. 오바마로서는 의료개혁법이 통과됐지만 지지율이 떨어져 이대로 가면 패배가 분명한 상황이다.

일단 오바마가 금융개혁을 이슈화해 기선을 잡았다. 그러나 골드만삭스도 녹록지 않다. 회사 최고경영자(CEO)는 직원들에게 “굴복 않겠다. 배신은 용서 않겠다”며 배수진을 쳤다. 누구든 밀리면 지는 싸움이다. 자율과 통제, 효율과 공정, 시장주의와 개입주의가 맞부딪치는 어려운 싸움이다. 그 결과는 우리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볼커룰이 통과되면 M&A를 통해 세계적 규모의 대형은행을 육성한다는 우리의 메가뱅크 구상도 어려워진다.

맬컴 글래드웰은 ‘그 개는 무엇을 보았나’란 책에서 ‘금융 정보는 넘쳐났지만 이해하는 사람이 적어 발생한 엔론사태에서 교훈을 얻었더라면 금융위기가 일어났을까’라고 반문한다. 월가 시스템에 보완이 필요하다는 쪽이다. 월가가 지금은 질 것 같아도 인간의 끝없는 욕심이 몰려드는 곳인 만큼 쉽게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그 말이 맞을 것 같기도 하다. 여하튼 볼만한 싸움이 이제 막 시작됐다.

윤양섭 국제부장 laila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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