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공무원시험 문제 속의 이상한 理念냄새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4월 15일 03시 00분


10일 실시된 9급 국가공무원 공채 필기시험에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의 설립시기와 발기선언문을 알아야 풀 수 있는 내용이 출제됐다. 한국사 과목 7번 문항은 ‘다음과 같은 내용의 선언문들을 시기 순으로 바르게 나열한 것은’ 하고 물으면서 4개의 지문 중 하나로 전교조 발기인대회 선언문을 제시했다.

공무원시험은 국가공무원이 될 만한 국가관과 자질, 능력을 지녔는지 측정하는 시험이다. 올해 공무원시험은 모집인원이 줄고 취업난이 겹쳐 14만여 명이 응시해 82.2 대 1의 사상최고 경쟁률을 기록했다. 단 1점이 당락을 좌우할지도 모르는 시험에 전교조처럼 정치투쟁과 좌편향 역사인식 논란을 빚는 단체에 대한 공부를 요구하는 문제가 나온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한국사 시험 20개 문항 중 현대사를 다룬 문항은 3개다. 다른 하나는 남북관계에 대한 선언들을 시기 순으로 배열하라는 문제였다. 나머지는 ‘현대 문화의 성장과 발전에 대한 설명으로 맞는 것’을 묻고, 보기 중 하나로 ‘1960년대 이후 정치적 민주화와 사회 경제적 평등을 지향하는 민중 문화 활동이 활발했다’가 틀린 답으로 제시됐다.

남북관계의 변천은 응시자의 이념(理念)과 상관없이 알아야 할 현대사 지식이라고 할 수 있지만 민중 문화에 대한 출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현대사 문제 3개 가운데 2개가 전교조와 비슷한 성향의 문제라면 출제의도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2008년의 현대사 문제는 헌법 전문이 지문으로 나왔고 2009년에는 1950년대 이후 한국사회 상황에 대해 물었다. 국민 모두가 알아야 할 현대사 내용은 놔둔 채 이념적 편향성이 드러나는 문제를 내고도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는 초기에 ‘문제 삼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국가고시는 교수들로 구성된 선정위원회 위원들이 문제은행에서 문제를 선정하고 재검토요원이 타당성을 검토해 출제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행안부는 뒤늦게 기존 문제은행에 있는 시험 문제들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명시한 헌법정신은 공무원 선발과 채용에서부터 지켜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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