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하준우]‘EBS 수능 약속’ 3번이나 한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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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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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육방송공사(EBS) 대학수학능력시험 강의는 3수(修)의 길로 접어들었다.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지난달 10일 2011학년도 수능에 EBS 강의 내용을 70% 이상 반영하겠다고 밝힌 건 3수 선포식이었다. 그 사연이 궁금하지만 정부는 아무런 설명이 없다.

안병영 전 교육부 장관은 2004년 2월 위성방송인 ‘EBS+1’채널이 수능 강의만 한다고 발표하면서 “수능 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참여하기 때문에 (수험생이) 큰 소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1997년 8월 EBS 위성교육방송이 시작됐을 때도 장관직에 있었기 때문에 7년 만의 리바이벌전이자 재수인 셈이었다.

사교육과의 싸움 힘들다는 고백

수능에 EBS 강의 내용이 반영된다는 건 대학입시 수험생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재수선포식이 있던 해 수능의 영역별 EBS 강의 반영률은 80∼86.7%였다. 지난해까지 매년 80% 안팎의 반영률이 유지됐다. 저간의 사정이 이렇지만 장관의 말 한마디는 위력이 컸다. EBS 교재가 불티났다. EBS 사이트의 하루 평균 가입자 수는 지난해까지 738명에서 올 들어 1159명으로 1.6배 늘었다. 서버는 다운 직전까지 갔다. 3수 선포식은 일단 성공했다.

3차례에 걸친 선포식은 같지만 달랐다. 이는 치솟는 사교육비 구덩이에서 학생과 학부모 구출작전의 일환이자, 공교육이 사교육과 경쟁하기 힘들다는 부끄러운 고백이었다. 민감한 대학 입시와 직접 연계하는 강수로 극적 효과를 노렸다는 점도 일치한다. 공교육의 역할을 중시한다는 점도 같다.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 안병만 장관은 70%란 연계율을 제시했다. 안병영 전 장관은 “딱 떨어지게 몇 %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방송 강의는 수능 준비에 보완적인 구실을 한다. 중요한 것은 학교 수업이다”고 말했다. 공교육에 무게가 더 실린 발언이다. 그는 EBS 수능 강의를 ‘해열제’로 불렀다. 교육이란 환자의 열을 일단 떨어뜨려 시간적 여유를 갖고 공교육을 정상화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말이다. 이 때문인지 안 전 장관은 대입에서 고교 내신 반영률을 높인다는 정책도 함께 발표했지만 안 장관은 EBS 수능만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안 전 장관은 13개월을 못 채우고 장관직을 떠났다. 그는 자신이 만든 EBS 강의가 장관이 바뀌면서 지속적으로 추진되지 못한 점을 안타까워했지만 비슷한 운명을 맞았다. 교육 당국은 이 정책을 포기하진 않았지만 적극 추진했다고 보기도 힘들다. 장관이 바뀌면 그럴싸한 정책을 쏟아내는 데 신경을 썼지 한 가지 정책을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밀고 나가 결실을 보는 끈질김과 책임감을 보여주지 못했다.

장관보다 오래 가는 정책이라야

EBS 수능 강의는 장점이 적지 않다. 저비용으로 고품격 강의를 제공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소외지역인 농산어촌에 대도시와 비슷한 교육 환경을 조성할 수도 있다. 이를 위해선 3수하는 사이에 부쩍 성장한 사교육 온라인 강의에 견줄 수 있는 명품 강의를 내놓아야 한다. 이 정책이 교육에 대한 본질적 접근은 아니라는 비판에도 귀를 기울여 교실 안에서 수능 준비를 마칠 수 있도록 실질적인 공교육 강화책을 꾸준히 추진해야 한다.

교과부는 이번을 마지막 기회로 생각해야 한다. 교육은 상당한 시일이 걸리는 어렵고 힘든 과정이다. 처음에만 반짝하고 장관이 바뀌면 흐지부지해선 그 결과가 뻔하다. 몇 년 뒤 4수 선포식을 할 수도 없는 지경 아닌가. 교육정책의 생명력은 지속성에서 나온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하준우 편집국 부국장 ha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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