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박성원]국회의원 소액후원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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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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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버락 오바마 후보는 인터넷을 통해 150만 명으로부터 2억6500만 달러를 모금했다. 이 중 무려 47%가 200달러 미만의 소액 후원금이었다. 미 연방의회는 2002년 ‘소프트 머니’(기업이나 단체가 정당에 제공하는 후원금)를 금지하는 매케인-파인골드 법을 통과시켰다. 자본가들이 직접 정치권에 돈을 기부하는 것을 제한하고 일반 시민이 개별 정치인에게 기부할 수 있는 2300달러 이하 ‘하드 머니’만 남겨두었다. 대신에 비영리 비정부기구(NGO)의 창구를 거쳐 무제한으로 기금을 모아 특정 후보자에게 제공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2004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자금법이 개정돼 법인과 단체의 후원금 제공을 금지했다. 개인이 내는 10만 원 이하 후원금에는 세액공제 혜택을 주었다. ‘오세훈 법’으로 불리는 이 법 역시 기업의 검은돈이 정치권에 유입되는 것을 차단하고 깨끗한 소액 다수의 정치자금을 활성화하자는 취지다. 제정 의도가 선(善)하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법은 아니다. 허점을 파고드는 나쁜 의도를 차단할 수 있어야 한다.

▷노동부 산하 6개 기관 노조가 지난해 2313명의 조합원을 동원해 30여 명의 국회의원에게 10만 원씩 모두 2억3000여만 원의 후원금을 조직적으로 제공하도록 한 사실이 선거관리위원회에 적발됐다. 정치자금법상 후원금 모금이 금지돼 있는 노조가 대상자를 선정해 후원금을 몰아준 셈이다. 소액후원금 장려 제도를 악용하고 법인·단체의 후원금 금지 규정 취지를 무색하게 만드는 편법이다.

▷국회 의원회관에는 연말이면 “직원들의 성의를 좀 모았다”며 10만 원 단위의 임직원들 명의로 된 후원금 뭉치를 싸들고 오는 기업 간부들이 많다. 지난해에는 한국수자원공사가 간부들을 상대로 3명의 여당 의원에게 10만 원씩 정치후원금을 내라는 e메일을 보낸 것으로 드러나 논란을 빚었다. 2006년에는 한 기업체가 직원들로부터 1인당 10만 원씩 5000여만 원을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 의원에게 몰아주었다가 기소된 사건도 있었다. 정치자금의 투명성을 높여 정치 발전에 기여하게 하자는 소액후원금제가 기업 또는 정부 산하기관들의 로비성 자금의 우회 전달 통로로 변질되고 있다.

박성원 논설위원 sw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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