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사법개혁, 본질은 어디 가고 주도권 다툼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3월 20일 03시 00분


법관 인사와 양형(量刑) 제도 등에 관한 한나라당의 사법제도 개선안을 대법원이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대법원은 그제 박일환 법원행정처장이 발표한 성명에서 “사법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와 존중심마저 잃은 처사”라면서 사법개혁의 주체는 사법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PD수첩’ 등 민감한 사건에 대한 일부 젊은 판사의 잇따른 무죄 판결을 계기로 분출된 정치권의 사법개혁 요구에 자존심이 상한 사법부가 항변(抗辯)을 한 것이다.

한나라당 사법제도 개선안의 일부 내용은 사법권 독립의 근간을 해칠 소지도 있다는 점에서 사법부의 우려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한나라당 안에는 현재 14명인 대법관을 24명으로 대폭 늘려 8명 이상을 비(非)법관 출신으로 기용하고, 법무부 장관 등이 추천하는 외부 인사 6명과 법관 3명으로 구성되는 법관인사위원회가 인사를 의결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를 대통령 직속기구로 변경하는 것도 논란의 대상이다. 사법부 독립을 침해할 소지가 있기 때문에 충분한 논의와 숙고가 필요하다. 한나라당이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일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박 처장의 의견 표명이 사법부와 행정부 또는 정권과의 갈등, 여야 정당 간의 정쟁, 나아가 사법파동의 진원(震源)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적이 염려된다. 박 처장의 성명에서 “일류 국가를 지향하는 우리나라의 품격에도 어울리지 않는다” 같은 표현은 평정심을 잃은 감정이 묻어난다. 한나라당에서도 “정치인보다 더 정치적인 대법원을 보니 놀랍다” 같은 비아냥거림이 나오는 것은 점잖지 못하다. 재판권은 사법부에 있지만 입법권은 국회에 있다는 점에서 상호존중이 바람직하다.

한나라당의 사법제도 개선안은 그야말로 한 정당의 안(案)에 불과하다. 민주당 등 야당들도 개선안을 내놓을 것이다. 여야 의원으로 구성된 사법개혁특별위원회의 본격 논의가 남아 있다. 이 과정에서 사법부가 마련한 개선안도 함께 올려놓고 논의할 기회가 있다. 여러 차례의 사법개혁 시도가 번번이 실패한 것은 사법부가 주체였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일리가 있다. 대법원장 직속 자문기구인 사법정책자문위원회(위원장 이홍구 전 국무총리)가 아무리 좋은 안을 만들더라도 국회의 심의를 거쳐 법으로 제정해야만 실행할 수 있다. 검사 변호사 법학교수 경력자 중에 법관을 임용하는 경력법관제만 하더라도 사법부 스스로 내놓기는 어려운 안이다.

국회도 삼권분립의 정신을 존중하면서 사법부의 견해를 충분히 듣고 배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사법부와 한나라당이 벌이는 언쟁은 사법개혁의 본질을 잊고 주도권 싸움에만 열중하는 것으로 국민 눈에 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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